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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나를 지워갔고 동료들은 나를 찾지 않았다.

챕터 5

by But Tier

[속보]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전 세계 비상"

"확진자 급증, 의료 시스템 붕괴 위기"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일상생활 변화"


국내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초기엔 몇 달 안에 끝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코로나라는 이름의 거대한 파도는 순식간에 우리 일상을 삼켜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제 불황이 이어졌다. 회사의 매출은 급락했고 사내에서도 하나 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강제적인 유급휴직 조치를 발표했다.


‘직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휴직을 시행합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내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팀장의 눈빛은 분명 나를 향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게 말했다.


"이왕이면 너 먼저 쉬는 게 낫지 않겠어?"


마치 준비된 대사처럼 던진 그 말에 나는 순간 가슴이 싸하게 식었다.

‘나부터 쉬라는 거지.’

이 지점, 저 지점을 의미 없이 떠도는 것보다 차라리 잠시 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한 달 정도 쉬자.’

어차피 모든 팀원이 돌아가면서 1개월씩 휴직을 한다고 했고 나는 당연히 나의 휴직이 끝나면 팀장이나 다른 팀원이 이어서 휴직할 거라 믿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선택이 지옥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잠시 쉬어라' 했지만, 그 '잠시'가 끝나지 않았다,


휴직 첫 달이 끝나갈 무렵, 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달도 너가 한 달 더 쉬는 게 좋겠다."

"다른 애들은 월급 70%만 받으면 생활이 어렵잖아. 월급 좀 더 받는 네가 쉬어 주는 게 맞지 않겠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저 회사에서 정한 순서대로 팀원들이 돌아가며 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 월급 70%라도 더 받는 내가 한 달 더 쉬자." 그렇게 두 번째 휴직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 달, 아내는 회사에서 ‘무급휴직’을 강요받았다.

우리 가정의 실질 소득은 30%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50%가 넘게 줄어든 셈이었다.

생활비가 빠듯해져 아이들의 학원을 끊고 외식도 줄였다. 밤마다 돈 걱정에 잠을 설쳤다.

하지만 회사가 어렵고 모두가 힘든 상황이니 조금만 버티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 달, 다시 걸려온 팀장의 전화.


"미안한데, 이번 달도 네가 쉬어야겠다."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중간에 뺄 직원을 찾기가 어렵네."


"그 프로젝트, 제가 하면 안 됩니까? 저도 월급 70%만 받는 건 힘듭니다."

"아... 근데 말이야, 기존 멤버들끼리 진행하는 게 더 효율적이거든."


몇 분간 실랑이 끝에, 그는 다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도착한 이메일.

<휴직 동의서 첨부드립니다. 확인 후 회신 바랍니다>

어이가 없었다.

그건 동의서가 아니라 통보서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회사에서 나는 이제 없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그 후, 한 달이 끝날 때마다 전화 대신 문자로 휴직 동의서가 날아왔다.

나는 조용히, 천천히 지워지고 있었다.


7개월.... 무려 7개월간 강제 휴직.

나는 원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성격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도 부당한 일엔 절차를 밟아 항의했고 업무 이견이 있으면 팀장과 논쟁도 벌였다.

적어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팀장의 일방적인 휴직 강요…. 그건 분명히 회사에 알렸어야 했다.

부당함에 맞서 따지고, 기록을 남기고, 싸웠어야 했다.

하지만 항우울제를 복용한 뒤로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귀찮아졌다.

약에 취한 몸은 흠뻑 물을 머금은 수건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우울감은 기운을 삼켰다. 그리고 끝내 말은 목구멍을 넘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나 답지 않았다.

회사는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고 동료들은 나를 떠올리지 않았다.

우울증은 점점 심해져 갔고 처방받는 약의 개수가 늘어났다.


그해, 코로나는 멈추지 않았다.


강제 휴직이 길어지는 동안 나는 평생 하지 않던 등산을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마침 집 근처에 적당한 산이 있었다. (그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다)

집에만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숨통을 조였다. 정말 무너질 것 같았다.

솔직히 살기 위해 산에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고 싶지 않아서였다.


등산을 하는 동안 생각이 멈춰서 좋았다.

조용한 숲속에서 헉헉대는 내 숨소리만 들렸다.

유일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이 드는 시간.

나의 호흡, 나의 심장, 나의 다리가 지금도 움직인다는 증거.

그렇게 나를…. 하루 더 버티게 했다.


산 정상에서...

최대한 거리가 먼 등산로를 골랐다. 길고 험한 코스를 따라 무작정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찼지만 쉬지 않고 올라갔다.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올 때면 산 중턱에 작은 절이 하나 있었다.

나는 매일 그곳에 들러 기도를 했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그 기도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 삶도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자신도 없었다.

내가 기도한 건 ‘복직’이 아니라 ‘원래의 나’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7개월 뒤 그날도 변함없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느덧 절이 보일 즈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팀장”


지난 수개월간 걸려온 적 없는 번호였다.

화면에 뜬 팀장의 이름을 보자 온몸이 얼어붙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손끝이 떨려 한참을 통화 버튼 위에서 망설였다.

전화를 받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욕지거리부터 터져 나갈 것 같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출근해."


7개월 만의 복귀 명령. 기다리던 순간이었지만 기쁘지도 않았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다시 시작되는 지옥일지 아니면 진짜 끝이 보이는 터널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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