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섬 X아일랜드
나뭇가지에 실오라기 하나 의지한 듯 위태하게 걸린 나뭇잎들.
그들의 생기를 다 하고 간신히 나뭇가지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이들의 위태로운 모습이 딱 내 모습 같다.
‘너희들도 이제 곧 떨어져 죽겠구나.’
'얼마 안 있으면 하나 둘 흐드러지게 죽음의 낙하들을 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흔들바람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만지며 지나갔다. 날 놀리던 흔들흔들 나뭇잎들이 결국 가루비처럼 춤을 추며 하강한다.
비발디의 봄.
앞에 펼쳐진 풍경과 함께 어디선가 혹독한 겨울 내내 죽지 않고 희망을 품고 움트는 새싹들이 돋아난다. 엄마와 자주 듣던 비발디의 봄 소리가 펼쳐진다.
혼자 이 길을 걷는 내가 바로 이곳의 주인공이다. 날 위로하는 건가. 신기하다. 나도, 우리 가족도, 다 패배자에 실패자들이라 버려진 사람들인데. 얘네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러지.
‘너희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면 이렇게 위로한 걸 후회할 거야. 내가 그렇게 환영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아니면 너희들은 상관하지 않는 거니?
솔직한 내 마음은 너희가 그걸 모르는 것도 좋고, 너희가 상관하지 않는 거라면 정말 고맙고.’
아~ 이 바람 냄새.
이곳 공기의 향기는 정말이지 최고이다.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새롭게 만드는 것 같다.
고. 맙. 다.
난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인데 이곳의 자연은 나를 온통 반겨준다. 고마워서 나도 하나하나 찬찬히 보고 인사해주고 싶다.
풀 하나하나, 공기 분자 하나하나, 새들의 노래 한 소절 한 소절.
행복하다.
날 더 이상 어둠에 있지 않게 해주는 향연.
산들바람이 저 멀리에서부터 나를 반기러 달려온다.
이만큼까지 온 나를 반갑게 안아주는 산들바람 넘어, 저기 앞에 듬직한 큰 나무가 보인다.
나무에 매달린 길쭉한 나뭇잎 하나가 바람의 춤을 추며 낙하하는데 빙그르르 또르르르 박자를 바꿔가며 돌고 돌고 돌다가 좀 전까지 붙어있던 나무 아래 풀숲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 나뭇잎은,
‘나의 마지막 춤을 봐봐~ 난 살아 있어~’라고 분명히 내게 말했고,
시간은 친절하게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게 배려를 해 주었다. 그 덕에 난 그 낙하하는 나뭇잎의 아름다운 춤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와~! 넌 마지막 순간까지도 너무 아름답구나.’
‘넌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 하는구나.’
‘넌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나는 내 눈도 내 입도 내 마음도 어느새 미소 짓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난 살아있어.’ 나뭇잎이 온몸으로 말해주었다.
‘난 살아있어’
찰나에 일어난 일인데 순간 나의 모든 인생이 지나갔다.
마지막 왈츠~
그 생의 가장 아름다운 왈츠~
내 안에 뜨거운 무언가가 벅차오르면서 내 몸을 하늘 위로 붕 띄우는 것 같았다.
에밀톤에서 살아왔던 내 모든 삶들과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 우리 가족에게 닥친 시련, 정부가 우리 가족을 이곳으로 보내게 된 일들, 이해가지 않고 화가 나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난, 내 인생도 내 가족 인생들도
어둠의 터널 안에 갇혀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숨은 쉬나 죽어있는 지난날들이 한꺼번에 동시상영 되면서도 나뭇잎의 마지막 춤을 보고 나니,
난 살아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하얀 마음이 갑자기 내 안의 모든 어둠을 쫓아내는 것 같았다.
그래, 난 살아있다. 난 내 삶에 최선을 다 하고 싶다. 그리고 난 행복하고 싶다. 눈물이 갑자기 흐른다. 그래, 이게 진짜 내 마음이야. 난 행복해지고 싶어. 나도 내 마지막 모습이 너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이고 싶어.
마지막 순간에도 ‘난 살아있어’라며 가장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갔던 노란 나뭇잎.
땅에 사뿐히 앉아 영양분이 되어 주고 새 생명을 내어 줄 나뭇잎처럼 살아가고 싶다.
가슴속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어둠에 있어야 하고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게 이런 마음이 생겨 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솟구쳤다.
나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니…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난 이곳에서 조용히 없어지길…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다음 편 3화 하얀 할아버지와 생선꾸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