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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나는 삐거덕 썩은 나무대문

지도에 없는 섬 X아일랜드

by 여온빛

나는 삐거덕 썩은 나무대문



이곳으로 온 지 며칠이 지났다. 대충 따져보면 6일 정도 지난 것 같다.

6일이라는 시간이 충분한지 부족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되고 있다. 내가 살았던 에밀톤이 그립고 나는 아직도 이 작은 시골이 낯설기만 하다. 어제는 용기를 내어 까만 큰 바위까지 가봤었다.

어제 보았던 갈매기들이 알을 잘 품고 있는지 오늘도 가봐야겠다. 열 때마다 경첩이 삐거덕 대는 이곳저곳 썩은 나무대문.


그나마도 부서진 곳이 많아서, 대문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대문 역할을 하기엔 턱없이 버거워하는 썩은 나무판자나 다름없다. 이것이 마치 지금 나의 인생 같다.


내 인생이 이 썩은 나무 판짝처럼 너덜너덜거리고 역할을 제대로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아픈 모습이다.


그래도 아프다고 날 좀 봐달라는 건지 고통에 반응하여 소리를 내는 건지, 손만 대도 바람만 스쳐가도 삐그덕 삐그덕 비명을 지른다. 아픈 내 인생을 억지로 열듯 그 삐거덕 대문을 열고 길을 나선다. 그래도 밖에 나오니 기분이 나아진다.


어제도 그랬다. 집에서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나가고 싶지도 않았었다. 계속 그래왔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계속 밖에 나가기 싫었다. 집안에만 있게 되고 그중에도 가장 어두운 곳이 내 자리다. 그렇다고 집에서 딱히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찌어찌해서 밖에 나오면 이상하게 기분은 나아지는 것 같긴 하다. 밖에 나가기 싫은데 나오면 좋다니.


난 내 기분의 주인이라고 여기지만 나는 내 기분이 어찌 작동되는 건지 영 모르겠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 기분이라는 존재가
내 주인인 거 같다.





하늘에서 공기를 뚫고 두 눈에 내려앉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게 된다. 어두운 집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눈에 들어오는 햇살이 눈을 찌르니 눈이 맵다.


하지만 금세 적응이 되고 바람 향기를 맡으며 길을 재촉한다. 내 앞에 펼쳐진 광경.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름답다’는 단어가 내 깊숙한 뱃속에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어둠에 있기로 작정된 내 인생에 이 단어는 영 떠올리기도 내뱉기도 싫은 말이다. 에밀톤에 있을 때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그동안 나는 도시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도시는 내 익숙함의 공간이었고, 나는 도시의 생활이 나에게 딱 맞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평생 익숙한 공간이 아닌 정반대의 공간에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직 이곳을 많은 곳을 다녀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제대로 만들어진 집이나 건물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곳에는 몇 명의 사람이 살고 있을지.. 친구 할 사람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사실 나는 친구도 필요 없다.


내게 필요한 한 가지는 무감각이다.


나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느끼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의 존재자체가 이 혹독한 세상에서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아는 거라곤 집에서 삐거덕 대문을 열고 길로 보이는 흙길로 나무숲을 쭉 걸어가다 보면 화가 나기도 억울하기도 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코끝을 달래는 향기가 점점 진해지는 곳, 물이 바위를 치는 소리가 가까워지는 그곳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어제부터 이곳은 내 친구가 되었다.


어제는 이 까만 바위 위에 앉아 몇 시간을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집 밖에 나올 때는 하얀 햇살이 뜨겁다 느껴졌는데 어느덧 내 앞으로 붉게 떨어지는 해를 정신을 놓고 바라봤으니까.


처음이었다. 그런 해를 본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난 그 해를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내 맘을 위로해 준 그 붉은 해를 오늘도 만나러 간다.


이곳에서는 친구도 말이 통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을 거 같다. 하지만 더욱 날 죽을 것처럼 외롭게 만드는 사실은 엄마이다. 그것이 너무 더욱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강하게 나를 괴롭힌다.


오늘따라 내 맘을 더 흔들기로 작정했는지 나무들은 갖가지 모습으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할 수 있는 한 더욱 열심히 흔들어서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날 놀리는 거겠지..'

너희들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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