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화보다 오래가야 하니까.
그리고 다음 날, 선생님보다 먼저 하교하는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묻기도 전에, 쏟아내듯 말했다.
“엄마, 미안해. 사실은 짝꿍한테 물을 먼저 뿌린 것도 나고,
먼저 때린 것도 나야. 엄마, 미안해. 용서해 줘.”
“... 응?”
빠르게 들려오는 말들이 흡수되지 못한 채,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고,
곧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엄마한테 혼날까 봐 거짓말했어.”
“아니 왜 그런...”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뒤, 울음소리만 들리는 수화기 너머로 나는 천천히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엄만 몰랐을 거야.
그런데 왜 굳이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우선 선생님이랑 통화해 볼게. 학원가지 말고 집에 가있어”
선생님이 전한 말은 이랬다.
짝꿍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개인 면담도 한 결과,
내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점심시간에는 먼저 툭툭 치는 모습도 보셨다고 말했다.
어제의 깊은 시름만큼이나, 아이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보다 더, 거짓말에 대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어머님, 지금 또래의 거짓말은 흔한 일입니다.
다그치기보다는 공감과 이해의 말을 건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선생님.
자식 마음 다 알 수 없다고 하더니, 제가 딱 그 짝이네요.
집에서 잘 가르쳐 보내겠습니다.”
통화를 끊고도 차에서 바로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아이를 만나면, 화를 그대로 퍼부을 것 같았다.
이 감정을 아이에게 그대로 쏟아내면,
아이는 다시는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대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사정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언니, 그래도 생각했던 것처럼 상황이 심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친구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 멈칫했다.
나는 내 안에 차 있는 화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랬을까’보다 ‘어떻게 그럴 수가’를 생각하고 있던 내가 부끄러웠다.
친구의 몇 마디 조언을 떠올리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차에서 내리자, 아이가 멀리서 뛰어와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주차장까지 내려왔을까.’
그 마음이 짠해서, 아이를 마주 안아주었다.
집에 올라가 아이와 마주 앉았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다 차분히 말을 건넸다.
“우선, 학교생활이 엄마 생각만큼 힘들진 않아서 다행이야.
그런데 친구들에게 왜 그랬는지, 엄마에게 왜 거짓말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 그냥...”
나는 아이에게 천천히 말했다.
“ㅇㅇ아, 엄마, 아빠는 네 편이야.
그런데 네 편인 엄마한테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엄마는 마음이 아파.
엄마가 너한테 그 정도의 믿음도 주지 못한 것 같아서 속상해.
다음부터는 꼭 사실대로 말해줘.
엄마는 언제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그래야 너를 도울 수 있어.”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미안해’라고 말했다.
너무 울었던 탓인지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홀로 앉아 아이가 왜 그랬을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문득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나도 ㅇㅇ이처럼 하면 친구가 생길까’
그 친구는 욕도 잘하고, 자기주장이 강한데 친구가 많다고 했다.
내 아이는 관찰을 잘한다.
그러니 친구들이 어떻게 친해지는지 관찰했을 것이다.
어쩌면 친구들이 장난처럼 툭툭 치며 친해지는 모습을 보며,
그걸 따라한 건 아닐까.
혼자만의 추측이지만,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낮잠에서 깬 아이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더했다.
“친구들과 놀고 싶다면 툭툭 치지 말고 ‘같이 놀자’고 말해봐.
그리고 친구가 다른 걸 하고 있거나,
다른 친구와 놀고 있다면 거절할 수도 있어.
그걸 외면당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 친구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자.
앞으로도 친구문제로 힘들면 엄마한테 꼭 얘기해 줘.
우리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과연, 다음에도 아이는 나에게 이야기해 줄까?
아이가 커갈수록 육아는 더 어렵고,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인생이 언제나 예고 없이 방향을 틀 듯, 육아도 마찬가지다.
철석같이 믿었던 아이에게 실망하고,
실망했으면서 다시 믿기로 다짐하게 된다.
어쩌면, 그게 어쩔 수 없는 엄마 마음이 아닐까.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함께 자란다.
거짓말을 했던 아이, 그 사실에 실망했지만
그 순간 나는 혼내는 대신 관계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사랑은, 화보다 오래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