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해도 괜찮아
'또각 또각 또각...'
한참을 이어지는 소리.
나에겐 특별한 주말 루틴이 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남편과 아이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신랑 열 개, 아이 스무 개, 그리고 나머지 내 것까지,
손톱, 발톱 50개를 깎는다.
매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귀찮기는커녕,
내 앞에 얌전히 손 발을 내밀고 앉은 그들이 사랑스럽다.
나는 그들의 손톱을 정성 들여 손질한다.
‘자르고 갈고 거스러미 정리까지’
마침내 잘 다듬어진 손톱을 보며,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 양 어깨를 으쓱인다.
그렇게 나는, 항상 나의 자리를 확인하곤 한다.
지난주, 손톱깎이를 든 나에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은 내가 해볼게.”
요 몇 주 아이는 내가 손톱 깎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었다.
혼자 해보고 싶은 마음에 눈으로 연습했던 모양이다.
나는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손톱깎이를 넘겨주었다.
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처음 쥐어본 손톱깎이가 낯선지 이리저리 돌려가며 손톱에 대어보더니,
서툰 손길로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깎기 시작했다.
스스로 해보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는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삐뚤빼뚤 잘린 손톱을 펼쳐 보이며
아이는 뿌듯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나 잘 잘랐지?”
기특하다는 칭찬을 건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얼굴에서 쑥쑥 자라는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날카롭게 남은 손톱을 다시 다듬어주며
문득 옛 생각이 났다.
4살 무렵,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다 자라기도 전에 사라지는 손톱을 보며,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쳐봤다.
매운 약을 바르기도 하고, 예쁜 스티커를 붙여도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알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난 원래 손톱의 절반 밖에 남지 않은 손톱과
붉게 물든 손 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물어뜯을 손톱이 생기지 않도록
매일매일 다듬어 주는 것뿐이었다.
그 시절의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걸까.
없어질까 걱정했던 손톱이
이제는 반짝반짝 건강하게 자라났다.
서툴게 잘렸지만, 단정해진 손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라는 건 손톱만이 아니었구나.’
아이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나도
손톱처럼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주말이면 손톱을 다듬겠지만,
어쩌면 그중 몇 개는,
이제 아이가 맡아줄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의 손끝을 보며 아이의 마음을 읽고,
내 마음도 들여다보는 시간.
그런 주말이면 나는,
엄마라는 이름이 참 다정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