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서운한 이상한 삼각관계
딸을 낳는다는 것은 남편에게 여자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더니,
그 말 틀린 것 하나 없다.
결혼한 지 14년이 지났다.
연애부터, 결혼생활까지 남편은 늘 한결같다.
그는 기념일에 꽃을 선물하지 않는다.
걸을 때도 나보다 한 발 앞서 걷는다.
내 얼굴만 보면 일 얘기를 한다.
야구 틀어놓고 자기 일쑤다.
외국영화는 자막 읽기 싫다며 보지 않는다.
뚱한 표정으로 잘 웃지 않는다.
나랑 맞는 게 술 밖에 없다.
쓰다 보니 왜 이 남자랑 결혼했나 싶다.
그럼에도 이 남자와 함께 사는 이유는,
다정한 듯 아닌 듯 헷갈리는 그 이상한 다정함 덕분이다.
그는 내가 싫어하는 일은 굳이 하지 않는다.
밥을 먹고 나면 조용히 내 물컵에 물을 따라 놓는다.
치킨을 시키면 닭가슴살을 골라 내 접시 위에 올려준다.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 포옹을 잊지 않는다.
무언가 요구할 때, 안 돼! 가 없다.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는 그런 다정함은 없지만,
츤데레 기질의 특별함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게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이는 아기 때부터 유독 아빠를 좋아했다.
말이 트일 무렵 처음 뱉은 말도 아빠였다.
유치원에 갈 무렵,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ㅇㅇ이 누구 딸?”
“아빠딸”
“ㅇㅇ이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뻐?”
“아빠”
하- 저 아이가 자라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빠부터 찾는
아빠바라기가 되었다.
이러니 아빠가 아이를 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이상할 일도 아니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남자가 아니었다.
딸아이가 태어난 뒤로 그는 아이 앞에서 딴 사람이 된다.
아침에 눈 뜨면 아이 침대로 가서 안고 뽀뽀를 퍼붓는다.
아이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미소를 머금고 귀를 기울인다.
그 얼굴엔 뚱한 표정은커녕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주말이면 아이와 데이트를 나간다.
나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둘이 붙어서 소곤거리며 꽁냥 거린다.
말투에서부터 다정함이 뚝뚝 떨어진다.
14년을 함께 살았지만, 나는 저런 스페셜 서비스는 딱히 받은 기억이 없다.
나도 아이가 태어나면서 인생의 1순위가 자연스레 아이가 되었다.
남편이 하는 행동들은 나도 아이에게 똑같이 하는 행동들인데,
그가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빈정이 상하고 심술이 난다.
이게 질투인지 서운함인지 섭섭함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스운 건 그 대상이 남편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이 함께 나를 놀리면, 화살은 언제나 남편에게로 향한다.
심술이라도 부릴라 치면, 남편은 ‘왜 또~’ 하면서 웃는다.
얄밉다 못해, 심술이 폭주기관차처럼 난다.
나만 서운하고 유치해지는 이 이상한 삼각관계의 패자는 언제나 나다.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라고,
남편도 딸도 내가 더 사랑하는 이상, 이길 길이 없다.
이것이 행복한 일상의 한 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이 아이에게 쏟는 애정은 선물 같은 것이다.
아이는 아빠의 사랑 안에서,
가족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억압 없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부모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배울 것이다.
실수해도 혼나지 않고 격려받으며, 자신감 있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며 자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사랑스러운 삼각관계 안에서
질투도 하고, 심술도 부리고, 몰래 삐치기도 하며 산다.
그리고 알고 있다.
그 모든 감정의 밑바닥엔 결국 ‘사랑’이 있다는 걸.
질투도, 섭섭함도, 서운함도
다 내가 여전히 아내이고 싶고, 가끔은 여자이고 싶고,
또 아주 가끔은 남편에게 1순위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나도 오빠 딸 할래”라고 선언할 순 없으니,
오늘도 나는 묵묵히 물컵을 채워주는 다정함에 기대어 산다.
이상한 삼각관계의 패자는 늘 나지만,
그래도 마음은 꽉 찬 승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