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장대

사랑은 틴트처럼, 옅고 선명하게

by 서진

출근 전,

화장하고 있는 나를 아이가 말끄러미 바라본다.


“엄마, 나도 그거 해주면 안 돼? 블러셔..”


‘나는 볼터치란 말이 더 익숙한데,

블러셔란 말은 어디서 들었을까?’


문득 든 궁금증을 뒤로하고, 나는 아이를 손짓해 불렀다.

아이의 말간 얼굴에 옅게 화장을 해주자,

아이는 거울을 보며 슬쩍 웃다 말고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렸다.

입술에 발라둔 틴트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난 그 모습이 귀여워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고,

아이는 샐쭉한 얼굴로 책가방을 둘러맸다.


아이가 내 화장대에 관심을 보이는 건

단순히 외모에 대한 호기심일까,

아니면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 걸까.

요즘 아이들 빠르다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그건 조금 이른 일 같기도 하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의 화장대 앞에 처음 앉았던 날,

나 역시 아이처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늘 일 때문에 바빴던 엄마는 특별한 날에만 화장을 했고,

난 화장하는 법을 어깨너머로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요즘처럼 유튜브가 있는 시절도 아니었고,

나에게 화장은 하려야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엄마의 비싼 영양크림을 몰래몰래 퍼서 바르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배운 적 없고 본 적 없어 못했지만,

내 아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요즘 아이는 등교 전에 내 향수를 몰래 뿌리기도 하고,

립밤이나 틴트를 슬쩍 바르기도 한다.

어른 흉내라기보단,

자기를 꾸며보고 싶은 자연스러운 본능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 인스타 릴스로 본 장면이 생각난다.

등굣길, 엄마의 배웅을 받고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가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에 아주 능숙하게 화장을 해내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가 싫어해서 못했던 거구나’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엄마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숨어서라도 꼭 하려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숨기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지금도 학교에서 화장이 금지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에게 틴트를 사줬다.

무조건 화장은 성인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몰래 할꺼라면

내 앞에서, 당당하게 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화장이라는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아이는 커가면서 나를 따라 하며 배울 것이다.

여자로서의 감정이나, 삶의 무늬들까지.

그때가 오면 '친구 같은 엄마'라는 말도

우리가 함께 쌓아온 시간 위에서

조금은 자연스럽게 가능하지 않을까.


작은 허용과 이해의 시작.

그것이 점점 멀어지는 아이와의 거리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동아줄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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