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그러워지는 마법의 주문

나는 범이다.

by 서진

아무리 육아책을 읽으며

마음에 여유를 품으려 노력해도

일순간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슬라임을 옷에 잔뜩 묻힌다거나,

여러 번 말해도 들은 척 만 척한다거나,

코딱지를 파서 이불에 문지르거나,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티브이를 보거나.


그런 날이면 나도 똑같이 하룻강아지가 되어 싸웠다.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아이가 나를 무시한다 느껴지면 참을 수 없었다.


“정말 왜 그러는 건데? 여러 번 얘기했잖아!”

“엄마 말이 안 들려?”

“넌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야?”

“그렇게 티비만 보다간 생각하는 머리 다 없어지겠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표정이 굳어갔다.

아이에게 비난 섞인 화를 쏟아내고 등을 돌리면

마음 깊은 데서 묵직한 자책감이 몰려들었다.


‘나는 어른인데, 이 작은 아이와 뭘 한 거지?’


그렇게 큰 일도 아니었고,

충분히 말로 타이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엄마로서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스스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집안일과 회사, 육아까지

늘 밀려오는 일들에 허우적거린다.

모든 엄마들이 바쁘게 사는데,

왜 유독 나는 이렇게 화가 많은지

그때는 잘 몰랐다.

아마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도 받아주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실망감이 들던 그 무렵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육아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큰 사람은 작은 시비에 동요하지 않는다는

이 속담에 빗대어 오은영 박사는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룻강아지는 범을 보고 짖을 수 있어요.

범은 하룻강아지를 보고 으르렁대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붙잡고

아이에 대한 분노나 불안이 엄습할 때면,

주문처럼 되뇌었다.

‘나는 범이다. ’

거대하고 고요한 범이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앞발을 느긋하게 내밀고,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는 범.

그러면 하룻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건 일종의 자기 최면이었다.


‘나의 작은 강아지가 세상이 서툴러 짖는구나

귀엽게 봐줘야지’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지자,

아이는 아직 작은 강아지고

나는 어른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더니,

어떤 눈으로 아이를 보느냐에 따라

아이가 달리 보이기도 했다.

짜증스러웠던 아이의 태도도 귀여운 투정으로 보이고,

다 커서 왜 저러나 싶던 행동도 서툰 애교로 보였다.

사실 아이가 하는 행동들에는 특별한 의도가 없다.

문제는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그치는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서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지금도 쉽지 않다.

머리로는 아이가 모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먼저 욱하고 나가버린다.

그래서 다잡은 마음이 흔들릴 때면

다시 주문을 되뇌어본다.


“나는 범이다.”


오늘은 겨우 범으로 살아남았다.

내일도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화도 위엄 있게 내는

진짜 범이 되어 있을 거라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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