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
삶은 태어남이 아니라, 배출로 시작된다.
사랑이라는 가식적인 표면 뒤에 욕망을 숨기고,
사랑을 빚어 창출하는 생명 뒤엔 욕망의 배출과 결괏값이라는 말이다.
부정하기엔 지금도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끔찍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많다.
우리의 존재는 욕망의 결과물일까, 아니면 애정이라는 껍데기에 숨겨진 배출물일까.
달처럼 빛나는 표면 아래 감춰진 어둠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인간다운 모습을 갈망했다.
질척이는 구정물 같은 몸일지라도 사랑을 부르고 싶었다.
아무리 내 허물을 벗어던져도 난 여전히 구정물일 뿐이지만.
닿을 수 없는 달을 보았다. 쥐를 씹어먹으며 울 뿐이다.
왜 나는 쓰레기인가.
왜 나는 구정물이지.
왜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해.
내 머리를 향해 도끼를 들어올렸다.
썩은 애벌레처럼 터진 체액 속에서 울부짖는다.
입조차 없는 시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꼬이는 파리가 장송곡을 부른다.
짐승이 되고 싶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살아남고 싶었다.
근데 왜 나는 손톱도 이빨도 없고
눈먼 구정물이 되었을까.
발아래 검은 웅덩이가 있다.
손을 집어넣어 웅덩이를 헤집었다.
깊고 깊은 심연 속의 내가 보인다.
그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내가
덩달아 헤집듯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이 품이라면 애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웅덩이 안으로 천천히 가라앉으며
내가 내게 말했다.
“이 몸뚱이는 버려도 괜찮아.
그러니 네 심장을 줘.
네 심장으로 나를 살아있게 해줘.”
남자친구는 항상 나를 외면했다.
우리는 함께 숨 쉬길 바랐지만,
결국 피를 흘리는 건 나일 뿐이지.
남자친구는 나의 심장을 삼킨 채 고개를 꺾었다.
네 심장은 준 적도 없으면서.
덕분에 너는 살아가지만
나는 텅 비어 죽어간다.
돌려줘.
내 심장이든, 너의 심장이든
그게 없으면 나는 살아갈 수가 없어.
심장 대신 채운 철골이 생을 뜻하진 않잖아.
나는 텅 빈 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썩어가는 몸에서 쓸모를 찾을 수 없을 텐데.
내 심장을 아주 가질거라면
차라리 내게 끝을 선물해줘.
너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작별할 수 있게 해줘.
그게 내게 마지막 선물이 되어줄 테니.
나는 먼지가 되어 하늘로 흩어지고 싶다.
집 안에 부유하는 먼지가 아니라
차가운 우주의 조각이 되고 싶다.
잿가루가 되어 가장 높은 곳에서 뿌려지면
한없이 가벼워진 나는 달로 떠날 수 있겠지.
나는 종말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소멸의 별이 되는 게 목표다.
배출되어 시작된 인생을 강제로 책임져야만 했으니
이 역시 책임을 져야한다.
죽음마저 책임져야만 하는 인생이다.
이것은 나의 종말의 서.
검은 물로 써 내려가는 마지막 흔적.
언젠가 물이 마르면
나는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작가의 말__
정신 건강을 위해 격주 연재 합니다.
이후 글부터는 일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