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담불라 석굴사원
오후가 되니 비가 그쳤다. 담불라의 유명한 관광지인 석굴 사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다행히 숙소가 담불라 석굴 사원과 멀지 않았다. 노트에 간단하게 지도를 그려 길을 나섰다.
담불라 석굴 사원은 자연 동굴을 다섯 개를 개조해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1세기 경 왈라감바후 왕이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도망쳐 이 동굴에 은신했다고 한다. 그는 왕권을 되찾은 뒤 동굴을 사원으로 바쳤다고 전해진다. 사원에는 150개 이상의 불상이 있고, 가장 큰 누운 부처 상은 15미터에 이른다. 불교 신자들에게 매우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질 뿐 아니라 스리랑카 스타일의 불교 미술 양식을 감상할 수 있어 순례객과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석굴 사원 앞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스리랑카 불교 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는 것이 예의이다. 성스러운 신의 공간에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사원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의 불교 미술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어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앉은 부처(좌불), 선 부처(입불), 누운 부처(와불) 등 불상의 자세나 손의 모양은 한국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한국의 부처님은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을 지닌 데 비해 스리랑카 부처님은 조금 더 날카롭고 날렵해 보였다. 스리랑카 부처님 앞에선 실수를 하면 안 될 것 같다. 한국의 부처님은 좀 봐주실 것 같았는데. 전반적인 채색의 느낌도 달랐다. 한국이 좀 더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이라면 스리랑카 불교 미술은 강하고 선명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놈의 비 때문에 되는 게 없다. 저녁으로는 스리랑카의 백반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간 식당 안에는 마치 기사 식당처럼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담은 뒤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익숙한 식재료도 보이고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찬들도 보였다. 내 접시에는 삶은 계란, 야채 볶음, 코코넛 밀크로 조린 감자볶음, 공심채 볶음, 코코넛 가루에 매콤상콤하게 간을 한 코코넛 삼발이 올라왔다. 반찬 밑에는 밥이 푸짐하게 깔려 있다.
훌륭한 한 끼였다. 열대 지역이라 그런지 반찬들의 간이 강했다. 유일하게 심심한 건 스마트폰이 없어 할 일을 잃은 내 손이었다. 식사 시간에 액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온전히 식사만 하는 게 아직 어색했다.
배부르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스트가 친절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줬다. 오늘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기리야 락을 보러 갔다 비만 잔뜩 맞고 온 이야기를 듣더니 호스트가 우리에게 제안했다.
“저한테도 차가 있어요. 원한다면 내일 새벽에 시기리야락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그가 제시한 투어비는 한화로 3만 원 정도였다. 천원도 안 하는 버스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프라이빗 투어인 점을 고려한다면 괜찮은 가격이었다. 내일 오전엔 다음 여행지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호스트와 새벽 4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부디 내일은 날씨가 좋길, 사진에서 보던 웅장한 시기리야락의 모습을 두 눈으로도 직접 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