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우리가 첫 여행지로 선택한 담불라는 사실 크게 구경할 게 없는 도시다. 하지만 담불라에는 스리랑카 공항에 떡 하니 붙어있는 스리랑카의 대표 관광지, 시기리야 락이 있다. 그리고 시기리야 락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피두랑갈라 락까지. 두 관광지 덕분에 담불라에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그쳤다. 시기리야 락을 보러 가기로 했다. 담불라에서 묵었던 숙소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지만 단 하나, 버스 정류장이 있는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스마트폰이 있다면 콜택시를 부르듯이 바로 ‘콜툭툭’을 부를 수 있어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지금은 좀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한참을 큰길로 걸어 나가 툭툭을 잡았다. 앞으로 숙소 예약할 때는 위치를 1순위로 보겠다고 다짐했다.
버스 스탠드에 도착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매연을 내뿜는 스리랑카의 로컬버스들이 줄줄이 서 있다. 버스 표지판에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적혀 있다. 버스 외관은 저마다 개성 있게 꾸며져 있다. 시기리야 락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탔다. 좌석이 좁아 다른 승객들과 어깨를 포개고 가는 건 기본이다. 자리에 얌전히 앉아 기다리니 차비를 받는 버스 컨덕터가 와서 목적지를 물었다. 시기리야 락까지 가는 버스비로 150루피(한화 750원)를 냈다. 옆 좌석 승객은 분명 100루피짜리 지폐를 내고 돌려받는 것 같은데, 정가를 알 길이 없다.
버스는 스리랑카의 혈관이라고 할 수 있다. 버스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콜롬보와 캔디 같은 대도시를 잇기도 한다. 스리랑카는 기차여행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기차로 여행할 수 있는 경로는 한정적이다. 로컬버스가 대부분의 도시 간 이동을 담당한다. 스리랑카 버스의 특징 중 하나는 상시 승차가 가능하는 점이다. 천천히 달리는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릴 때도 벨 같은 건 없고, 눈치껏 알아서 잘 내리면 된다. 승객들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버스는 뒷문을 항상 열어 놓는다.
버스의 또 다른 재미는 잡상인이다. 목적지까지 잡상인이 수시로 올라타 간식이나 물건을 판다. 이 날 버스에서 만난 건 탬버린 뮤지션이었다. 그는 오직 탬버린 하나로 요란한 박자를 만들어내며 그 박자에 맞춰 신명 나게 노래를 불렀다. 자세히 들어보면 드럼의 베이스에 해당하는 ‘둥’, 하이햇에 해당하는 ‘칫’, 스네어에 해당하는 ‘탓’, 소리가 모두 들려 신기했다. 탬버린 뮤지션은 공연이 끝난 뒤 버스를 돌며 관람비를 걷었다. 내가 낸 액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나를 한 번 째려봤다. 머쓱했다.
탬버린 뮤지션의 음악에 푹 빠진 사이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내렸는데 이럴 수가, 천장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위에서는 비가 퍼붓고 밑에서는 도로가 임시 개천이 됐다. 흙탕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이런 폭우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억울하고 허무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근처 슈퍼에 들어가 홍차를 마시며 하염없이 빗줄기가 약해지길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길숭이들 주려고 바나나를 한 다발 샀다. 숙소에서 하나씩 던져줬더니 원숭이들이 눈을 번뜩이며 달려왔다. 서로 먹겠다고 난리다. 처음엔 그런 원숭이들이 귀여워 바나나를 계속 던져줬다. 그러자 그들은 대형을 유지한 채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좀 무섭기 시작했다. 그때, 뒤 쪽에서 인기척, 아니 원기척이 들렸다. 재빠른 원숭이 한 마리가 바나나 다발에 접근해 낚아채는 소리였다. 분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이, 이 도둑 원숭이가!”
그러나 원숭이는 이미 바나나 다발을 들고 지붕 위로 도망간 뒤였다. 훔친 바나나 다발을 두고 원숭이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는지 얇은 철제 지붕에서 우당탕당 지진 소리가 났다.
비 때문에 헛물만 키고 원숭이들에게 바나나마저 뜯긴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