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는 순간이 있다. 마음은 아직 달릴 수 있다고 우기지만, 몸은 더는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얼마 전 내가 겪은 대상포진은 그런 경고장이었다.
왼쪽 허리 아래와 옆구리 사이에 테니스공만 한 포진이 번졌다. 불길 속에 던져진 듯 뜨겁고, 바늘 수백 개가 미친 듯이 찔러대는 고통은 차라리 의식을 잃고 싶을 만큼 집요했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환장하겠다는 말만 입술 사이로 흘려보내며, 나는 스스로 무너져가는 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항 바이러스제와 대상포진 치료제를 처방해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결국 면역력 싸움입니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합니다."
그 말은 너무 단순했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지금의 내 일상에서 '잘 쉬는 일'은 가장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주방은 하루 19시간, 아침 7시 반부터 새벽 2시 반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27명이 교대로 돌아가지만, 휴가와 병가가 겹치면 언제든 인력은 바닥을 드러낸다. 누군가 병가로 빠지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대리근무자를 구하다 구하다 끝내 구해지지 않으면, 결국 팀장인 내가 직접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쉴 틈 없이 몸을 갈아 넣으며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다.
설령 하루쯤 쉬는 날이 찾아와도 온전히 쉬는 일은 드물었다. 브런치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을 붙잡았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겹쳐 하루 스물네 시간은 늘 모자랐다. 결국 그렇게 쌓이고 쌓인 피로가 내 몸을 무너뜨렸다.
분노와 서러움이 뒤엉킨 채로 시간을 보냈다.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 책임감과 의무라는 이름으로 버텨야만 했던 나날들. 웃어넘기려 애썼지만, 웃음은 금세 한숨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몸은 결국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 쉬지 않으면 이렇게 가차 없이 신호를 보내고 만다. 그 신호는 어떤 말보다 강렬했고, 한순간의 고통이 아니라 오래 남을 흔적을 남겼다.
대상포진은 흉터만 남기고 지나간 것이 아니다. 내 몸을 소홀히 하면 삶 전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갔다. 다행히 이번 신호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다시 살아갈 길을 가르쳐 주는 경고였다.
지금도 주방의 불빛은 꺼지지 않지만, 나는 그 불빛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숨 쉬고 걸을 수 있는 일상, 글을 쓰는 시간, 잠깐의 고요한 휴식이 모두 삶의 선물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다시 찾아온 평범함은 예전과 달랐다. 고통이 남긴 흔적이 내 하루의 속도를 천천히 낮추며, 작은 순간들을 오래 바라보게 만들었다.
언젠가 이 경험을 돌아볼 때, 오늘의 고통이 오히려 나를 지켜준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고통은 늘 어떤 깨달음을 품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아프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발견한 작은 깨달음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삶을 조용히 지켜주고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