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였을까, 계란이 먼저였을까.
그 오래된 질문처럼,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MBTI가 나를 만든 걸까,
아니면 단지 나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일까."
예전엔 사람들과 만나면 대화 중간에
"혹시 혈액형이 뭐예요?" 하고 물었다.
A형은 꼼꼼하고, O형은 느긋하고,
B형은 자유롭고 개성이 강하며,
AB형은 A형과 B형의 성격이 섞인 복합형으로,
지적이면서도 감정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를 MBTI가 대신하게 되었다.
"MBTI가 뭐예요?"
요즘은 이 질문이 마치 인사말처럼 자연스럽다.
이름 다음, 나이보다 먼저,
직업보다 더 궁금한 네 글자.
나는 'ESFJ'.
흔히 '사교적인 외교관'이라고 불리는 유형이다.
밝고 친절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자주 말한다.
"역시 ESFJ 답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분위기를 살피는 편이고,
누군가 힘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이 네 글자로 정말 내 모든 모습을 다 말할 수 있을까?' 하며 생각하곤 한다.
나는 여전히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이 흔들리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누군가의 짧은 다정함에 괜히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 모든 나를 네 글자로 정리하기엔
조금 좁고, 너무 단정하다.
MBTI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사람의 온기와 깊이까지 담기엔 부족하다.
사람을 안다는 건 유형을 맞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을 함께 걸어보는 일이다.
말투 속의 따스함, 눈빛 속의 진심, 조심스러운 손짓,
그리고 말보다 큰 침묵까지...
그 모든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을 이룬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조금 더 느긋하게 바라보려 한다.
성격보다 온기를, 그리고 하루의 흔적을 본다.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그저 옆에 머물며 그 사람의 속도를 기다려준다.
MBTI는 참고일 뿐이다. 사람은 언제나 그 이상이다.
때로는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모순투성이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결국 중요한 건 네 글자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건
성격유형이 아니라 바로 '사람' 그 온전함이다.
우리가 진짜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수많은 유형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준 그 순간들이다.
결국, 네 글자가 아니라
그 온기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 에필로그 ************
지금까지 "일상의 로고–사소한 오늘들의 조각"을 함께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 주변에서 일어난 수많은 순간들을 글로 담아내기엔 늘 제 글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어느새 30회를 채우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길을 함께 걸어 주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과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가 제 이야기를 이어갈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려 합니다.
더 깊고 빛나는 일상의 기록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호주아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