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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삼겹살과 고스톱, 그리고 땀범벅 산타 실종사건

한 여름의 크리스 마스에 생긴일.

by 호주아재

호주는 남반구에 있어서 크리스마스가 겨울이 아니라 한여름에 온다. 그리고 그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에 산타와 루돌프는 아예 오질 않는다. 왜냐고? 너무 간단하다. 산타의 빨간 털옷은 여기 날씨에서는 찜질방용이고, 북극에서 살던 루돌프는 이 열기에 기절해 버릴 게 뻔하다. 한 마디로, 호주의 아이들은 착하든 말든 울든지 말든지 괜찮다. 아무튼 산타는 덥다는 핑계로 안 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뿐! 외국에 나와 있으면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바로 K-Food, 그리고 그중에서도 원탑은 삼겹살이다. 호주 아파트나 공원에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바비큐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나는 잽싸게 아파트 바비큐장을 예약 해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삼겹살, 쌈야채, 쌈장, 고추장, 김치까지 풀 세팅 완료! 그리고 사치스럽지만 오늘만큼은 허락된 얼음 맥주까지!
목표는 하나! '오늘만큼은 공부 스트레스 날리고 신나게 먹고 마시고 떠들자!' 그렇게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폭풍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파티가 여기서 끝났다면 너무 심심하지 않겠어? 그래서 한국에서 공수해 온 화투장을 꺼내 들고, 본격적인 "고스톱 대전"에 돌입했다.

{참가자 소개}
• 자칭 타짜, 한때 동네를 주름잡았다는 "진언니"
• 부산에서 밑장 좀 빼봤다는 "에이미"
• 노잼 도시 대전에서 고스톱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제이미"
• 생각보다 손이 더 빠른 "켈리"
• 그리고 나! (이 판에서 가장 순수한 손을 가진 자)
참고로 아내와 지니는 디저트 준비와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룰은 간단했다. 1점당 10센트, 이긴 사람이 다음 날 햄버거를 쏘는 걸로!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진언니는 초반부터 광을 모으며 여유를 부렸고, 에이미는 부산 출신답게 스릴 넘치는 한 방을 노렸다. 제이미는 "이건 대전 스타일이야!"라며 신중하게 패를 내밀었고, 켈리는 생각하는 것보다 손이 더 빨라서 매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나는? 그냥 착하게 돈을 기부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야! 나한테 왜 피박을 씌워!" "야 이거 일부러 돈 따려고 밑장 뺐냐?!" "아니 내가 언제 밑장을 빼! 난 손이 빠를 뿐이야!"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밤 10시, 11시, 자정을 지나 새벽 2시까지 손목이 끊어지도록 패를 돌렸다. ‘고스톱도 노동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우리는 열심히 팔운동을 한 탓에 허기가 몰려왔고, 그때 에이미가 갈고닦은 실력으로 끓여준 "미고랭"(인도네시아식 볶음 라면)이 등장했다.
그 맛은? 삼겹살을 배 터지게 먹었다는 사실을 싹 잊게 할 만큼 기가 막혔다! 한 젓가락 먹고 나서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며 미고랭을 흡입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걸 먹고 나니 또다시 체력을 회복한 우리가 고스톱을 안 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라면까지 먹었으니 이제 그만 잘까?'라는 생각은 기우였다.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해가 뜰 때까지 고스톱을 쳤다. 아침이 밝아올 즈음, 우리는 서로 초췌한 얼굴로 웃으며 패를 내려놓았다.

결론?
산타가 없어도, 선물이 없어도, 삼겹살과 얼음맥주 그리고 고스톱만 있다면 크리스마스는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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