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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달러 탄생과 달러 패권의 확장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by 이설아빠

금의 시대가 끝나고, 자본의 시대가 열리다


1970년대 초, 세계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달러와 금의 결혼은 끝이 났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하였고, 달러는 더 이상 금으로 보증되지 않는 종이돈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곧 새로운 해법을 찾아냈다. 그 해법은 바로 ‘석유’였다.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하는 ‘페트로 달러’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달러는 다시 한번 세계의 기준 통화로 부상하였다. 하지만 석유만으로는 부족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세계는 공장을 짓고 무역을 늘릴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했다. 자금의 흐름은 국경을 넘어야 했고, 그것이 가능해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아닌 미국 밖이었다.


그곳이 바로, “유로달러 시장(Eurodollar Market)”이었다.


국경 밖에서 피어난 달러의 제국


유로달러란 말은 사실 어렵지 않다. 미국 외부의 은행, 특히 유럽 금융기관에 예치된 달러를 뜻한다. 이름에 ‘유로’가 들어간 이유는 단순하다. 이 시장이 처음 활발히 성장한 곳이 유럽, 특히 런던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련은 석유 수출로 달러를 벌었지만, 이 돈을 미국 은행에 맡기면 혹시라도 동결당할까 걱정했다. 이런 이유로 런던 은행에 달러를 예치하기 시작하였고, 그 달러가 미국 밖에서 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달러는 국경을 넘어 자생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이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판매로 쌓은 막대한 오일머니를 런던, 취리히, 홍콩 같은 금융 허브에 예치하면서, 전 세계에 유동성이 흘러넘쳤다. 이 자금은 단순히 잠들지 않았다. 은행을 통해 다시 대출과 투자 자금으로 흘러나가며, 신흥국의 산업화를 밀어붙이는 연료가 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유로달러’였을까? 답은 하나, 자유로움이었다. 미국 내 은행은 ‘레귤레이션 Q(Regulation Q)’라는 제도 때문에 예금 이자를 일정 이상 줄 수 없었다. 반면, 유럽 은행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예금주는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었고, 은행은 더 많은 달러를 모을 수 있었다.


게다가 유로달러 은행은 미국 연준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지급준비율을 쌓아둘 의무도 없었고, 대출에도 거의 제한이 없었다. 달러를 맡기면 거의 그대로 빌려줄 수 있었고, 그 돈은 기업의 공장 건설, 국가의 인프라 확충, 신흥국의 산업화 자금으로 흘러갔다. 한국의 조선소, 멕시코의 고속도로, 브라질의 산업단지 뒤에는 바로 이 ‘유로달러 자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양날의 검이었다. 너무 쉽게 빚을 얻을 수 있었던 만큼, 감당할 수 없는 부채가 쌓였다. 1980년대 초, 미국 연준의장 폴 볼커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20% 가까이 올리자 모든 것이 뒤집혔다.


이자 부담이 폭등하자 신흥국들은 줄줄이 무너졌다. 멕시코가 디폴트를 선언하였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연쇄적으로 흔들렸다. 값싼 달러가 세계 경제를 키웠지만, 동시에 위기의 뇌관을 심어놓은 셈이었다.


본토를 넘어선 달러, 새로운 제국의 등장


유로달러 시장은 단순한 금융 혁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달러의 영토 확장이었다. 이제 달러는 미국 정부의 통제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았다. 런던, 홍콩, 취리히의 은행 금고 속에서도 살아 숨 쉬었다. 석유로 시작된 달러 패권은 이제 금융의 혈관을 타고 세계를 순환했다.


하지만 달러의 확장은 동시에 불균형의 씨앗이기도 했다. 신흥국들은 외채 위기에 시달렸고, 미국과 유럽, 일본은 달러 강세로 무역 불균형에 흔들렸다. 세계 경제가 하나의 통화에 의존할수록, 그 통화의 파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달러는 이제 하나의 나라의 화폐가 아닌, 전 지구적 권력의 언어가 되었다. 그렇기에 세계는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 거대한 달러 제국의 방향은 누가 결정할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달러의 시대는 또 한 번 방향을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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