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1997년 7월 2일, 태국 중앙은행이 사실상의 ‘통화바스켓 페그’를 접고 관리변동으로 선회하는 순간, 시장은 다음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어디지?” 바트화가 흔들리자 링깃·루피아·원화까지 연쇄적으로 요동했고, 각국 당국은 필사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방어의 탄약은 역설적으로 모두 달러였다. 위기의 첫 문장은 태국이 썼지만, 마침표는 “달러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조달할 수 있느냐”가 찍었다.
따라서, “달러가 원인이었나?”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위기를 키운 구조적 취약과 사후에 만들어진 지역 안전망까지, ‘달러의 양면성’을 따라가 본다.
플라자 합의(1985) 이후 과도한 달러 강세가 꺾였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 흐름은 급변했다. 미 연준의 1994년 긴축과 미국 IT 혁신에 따른 생산성 개선, 일본·유럽의 저성장·저금리가 겹치며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회귀했고 달러는 재강세 국면에 들어섰다. 아시아 각국이 달러에 연동된 환율 체계를 유지하던 상황에서 이는 곧바로 부담이 되었고, 수출 가격경쟁력 약화와 경상수지 적자 누적으로 이어졌다. 불씨는 작아 보였지만, 연료통은 이미 가득 찬 셈이었다.
태국은 고정환율을 지키려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며 버텼으나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닻을 뽑는 순간, 환율의 재평가가 역내로 빠르게 전염되었다. 1년 남짓한 기간에 바트·루피아·링깃·원화가 대폭 절하되었고, 이는 단순한 숫자 변동이 아니라 기업 대차대조표를 정면으로 가격하였다. 매출은 자국통화로 잡히지만 부채는 달러로 잡힌 상태에서 환율이 흔들리자 현금흐름은 거칠어지고 자본잠식의 시계는 동시에 빨라졌다.
문제의 핵심은 ‘오리지널 신(Original Sin)’, 즉 자국통화로의 장기 조달이 어려워 달러 단기부채에 의존해 온 구조였다. 페그(혹은 준고정)가 흔들리는 순간 위험은 즉시 현실이 되었고, 환율이 20~30%만 움직여도 자본이 깎였다. 단기 만기 집중은 롤오버 리스크를 폭발시켰고, 한국의 유동성 경색과 인도네시아의 은행·기업 부실 급증은 이러한 통화·만기 미스매치의 전형적 결말을 보여주었다.
불길을 끈 것도 달러였다. 태국(1997.8), 인도네시아(1997.10/1998.1), 한국(1997.12)은 잇따라 IMF 프로그램을 가동하였고, 구제 통화는 달러였으며 그 대가로 금리 인상·재정긴축·금융 및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조건으로 붙었다. 한국 사회의 ‘금 모으기 운동’은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구조적 논쟁과는 별개로 달러 유동성 자체가 불을 끄는 실물 연료였음을 대중이 체감한 사건이었다.
위기 이후 동아시아는 ‘달러 유동성 기근’이라는 교훈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2000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로 시작한 양자 스와프 네트워크는 2010년 CMIM(다자화)으로 진화하며 규모와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장했고, 이는 IMF를 대체하려는 선언이 아니라 지역에 추가 소방라인을 깔아 시간을 벌겠다는 현실적 설계였다. 그럼에도 글로벌 결제와 부채의 키 통화가 달러라는 사실, 그리고 그 통화의 네트워크 효과가 주는 관성은 바뀌지 않았다.
1997~98년의 교훈은 단순하다. 달러가 원인 그 자체라기보다, 달러를 전제로 설계된 취약한 금융구조, 즉 달러 페그(혹은 준고정)와 달러표 단기부채, 그리고 감독·지배구조의 허점이 강달러·심리 급변과 만나 폭발한 것이다. 칼날이 달러였다면, 상처를 꿰맨 바늘 또한 달러였다.
오늘의 시사점은 분명하다.
통화·만기 미스매치 최소화: 현지통화 매출에는 가급적 현지통화 부채로 대응하고, 장·단기 만기를 분산
외화 유동성 버퍼와 스트레스 테스트: 단순 유동성 비율을 넘어 달러 자금조달 경로의 대체 가능성까지 점검
현지통화 채권시장·헤지 시장 육성: 기업이 자국통화 장기조달을 할 수 있어야 오리지널 신의 고리 끊기 가능
다층적 안전망: 중앙은행 스왑라인, CMIM 같은 지역 소방라인, 그리고 내부 위기대응 SOP를 사전에 정비
결제·조달 통화 다변화의 현실성: 이상은 다변화지만, 네트워크 효과가 지배하는 결제·자금시장의 관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변화는 ‘대체’가 아니라 보완과 충격흡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현실적
아시아 외환위기는 달러의 시대를 끝내지 못했다. 다만 달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집단적 학습을 남겼다. 다음 편에서는 2008년, 달러의 본진에서 불이 났을 때 왜 세계가 오히려 더 많은 달러를 원했는지, 스왑라인과 ‘달러 피난처’ 본능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