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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양적완화(QE)와 밀려든 달러 파도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by 이설아빠

리먼 이후, 금리를 더 내릴 수 없을 때 ‘다른 길’이 열렸다


리먼 파산 직후 월가는 불신으로 얼어붙었고, 은행 간 자금이 멈추며 단기금리 시장이 경직되었다. 기준금리를 0% 근처까지 내렸지만(제로 하한),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연준(Fed)은 ‘우회 도로’를 택했다. 장기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직접 사들이는 양적완화(QE)다.


2008년 11월, 연준은 기관채·주택저당증권(MBS)을 대규모로 매입하는 QE1을 발표했고, 2010년 11월에는 국채 6,000억 달러 추가 매입(QE2), 2012년 9월에는 월 400억 달러 주택저당증권(MBS) 오픈엔디드 매입(QE3)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월 450억 달러 국채를 더해 매입 속도를 월 850억 달러로 확대하였다. 이로써 연준 대차대조표는 팬데믹 정점에 약 9조 달러 내외까지 불어났고, 2022년부터는 만기 재투자를 줄이는 양적긴축(QT)으로 되돌렸다.


핵심은 기계적 매입이 아니라 심리와 금리구조다. 장기채 가격을 끌어올려 수익률(장기금리)을 낮추면, 위험자산의 상대 매력이 커진다. 이른바 포트폴리오 재배분 채널이다. 2009~2013년 동안 글로벌 유동성은 주식·회사채·신흥국으로 흘렀고, 그 뒤로 남은 것은 ‘들어올 때의 달콤함’과 ‘빠질 때의 고통’이었다.


양적완화(QE)가 바꿔놓은 세 가지 흐름


첫째, 장기금리·신용스프레드·심리의 동시 작동

양적완화(QE)는 기준금리로 조절하기 어려운 장기 구간을 직접 겨냥한다. 연준이 장기국채·주택저당증권(MBS)를 꾸준히 사면 곡선 후단(10~30년) 수익률이 내려가고, 모기지 금리가 동반 하락하며 주택·기업대출 여건이 개선된다.


2012년 QE3는 오픈엔디드로 “경제가 충분히 개선될 때까지”를 내걸어 정책 지속성을 신호하였다. 신용스프레드는 좁혀졌고, 위험 프리미엄은 낮아졌다.


※ 오픈엔디드(open-ended): 끝나는 날짜나 총액을 미리 못 박지 않고,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계속한다는 의미


둘째, ‘달러 홍수’와 신흥국의 단맛·쓴맛

안전자산 수익률이 낮아지면 자금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신흥국 자산으로 이동한다. 2010년대 초 신흥국에는 대규모 자금 유입이 이어졌고, 현지 통화 강세·자산가격 상승이 나타났다. 그러나 달러표시 부채가 늘어난 상태에서 환율이 반대로 흔들리면 상환부담이 급증한다.


2013년 5월 ‘테이퍼 텐트럼’ 때가 그 단면이다. 연준이 “매입 속도를 줄일 수 있다”고 시사하자, 신흥국 통화가 급락하고 금리가 급등했으며, 자금은 단기간에 역류하였다.


※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 2013년 봄과 여름에 벌어진 "연준이 양적안화(QE) 속도를 줄일 수 있다"는 신호만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린 사건(매입 축소 예고 → 금리 급등/위험자산 급락)


셋째, 달러가 ‘모자랄’ 때의 생명줄, 스왑라인·RRP·준비금

아이러니하게도 ‘달러가 많을수록’ 스트레스 국면에는 달러가 부족해졌다. 미국 밖의 은행·기업이 달러 거래·상환에 의존하는 구조가 커졌기 때문이다. 2008년·2020년, 연준과 주요 중앙은행 간 통화스왑 라인은 글로벌 달러 유동성의 긴급 파이프로 작동했다.


한편 팬데믹 이후 역레포(RRP)에는 초과 현금이 대거 쌓였다가, 양적긴축(QT) 국면에서 잔액이 빠르게 줄며 은행 준비금(Reserves)에 대한 의존이 커졌다. 준비금이 체감 임계 아래로 내려가면 단기금리 급등, 머니마켓 긴장 같은 유동성 경색 신호가 튀어나올 수 있다. 정책 당국이 역레포(RRP)·준비금·국채 발행 캘린더를 함께 바라보는 이유다.


※ 스트레스(Stress): 금융 시스템이 돈을 원활히 돌리지 못하는 압력

※ 역레포(RRP, Reverse Repurchase Agreement): 연준과의 하루짜리 담보 거래


달러의 바다는 얕지 않다


양적완화(QE)의 10여 년은 달러가 ‘약해진’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달러 네트워크가 금융시스템 속으로 더 깊게 스며들며 연결의 농도를 높인 시기였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지금 파도는 들어오나, 빠지나?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배(재무구조)와 어떤 항해술(유동성·헤지·만기관리)을 갖췄는가."


정책은 평시 외화유동성을 촘촘히 관리하고, 위기 땐 스왑라인·IMF 라인을 즉시 가동할 이중 안전판을 상시 마련하여야 한다. 투자는 달러 사이클 민감도를 내재화해 신흥국 비중일수록 환헤지와 현금성 버퍼를 키우고, 전이 국면엔 레버리지·만기를 보수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은 달러부채–달러매출 듀레이션을 맞춰 자연헤지하고, 가격전가·통화 다변화·정기 헤지를 표준화하며, 양적긴축(TQ) 국면 전에는 결제·운전자금 라인을 선확약하여야 한다.


따라서, 정책은 안전판의 두께, 투자자는 유동성의 여유, 기업은 현금흐름의 탄력으로 답해야 한다. 다음 파도는 언제든 다시 온다. 준비된 자만이 흔들림 속에서 기회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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