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enss Story
달러가 금의 자리를 대신한 1971년 이후, 세계는 달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석유가 달러로만 가격·결제되고, 국제 금융 네트워크가 달러 표준으로 맞물리며 각국의 외환보유액과 무역 대금도 달러에 묶였다. 반세기 동안 달러는 곧 ‘신뢰’이자 ‘지배’였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중국이 다른 길을 내기 시작하였다. ‘세계의 공장’을 넘어 ‘세계의 은행’으로 가겠다며 자국 통화, 위안화(RMB)의 국제화를 실험대에 올린 것이다.
2009년 여름, 홍콩·마카오 및 일부 동남아를 대상으로 한 ‘위안화 무역결제’ 시범사업이 시작되었다. 제한적 범위였지만, 핵심은 분명하였다. “달러를 통하지 않고도 국경 간 거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실험의 연장선에서 2015년 11월 IMF는 위안화를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하기로 결정하였고, 2016년 10월부터 공식 발효되었다. 이는 위안화가 달러·유로·엔·파운드와 함께 IMF의 5대 준비통화로 등재되었다는 뜻이다.
국제 결제 비중에서 위안화의 존재감은 ‘상승과 조정’을 거듭하고 있다. SWIFT의 2025년 6월 통계에 따르면, 위안화는 글로벌 결제(유로존 내부 결제 제외 아님)에서 6위, 점유율 2.88%였다(달러·유로와는 큰 격차). 2023~24년 한때 4%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수치가 조정을 거친 모습이다.
반면 준비통화(각국 외환보유액)로서의 위안화 비중은 더 낮다. IMF COFER를 인용한 2024년 4분기·2025년 1분기 보도에 따르면 위안화 점유율은 약 2.2% 수준으로, 달러(약 58% 안팎)와는 격차가 상당히 크다.
중국은 통화를 ‘밖으로 퍼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실제로 위안화를 쓰게 만드는 현장을 설계하였다. 그 해법이 2013년 발표된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다. 철도·항만·발전소·통신망 등 인프라 프로젝트를 묶은 초대형 구상으로, 2024~25년 기준으로 150개 안팎 국가가 관여하는 ‘거대한 발주처’이자 ‘결제 현장’이 되었다.
2025년, 콜롬비아가 협력 계획에 공식 서명한 반면, 반면 파나마는 탈퇴를 선언하는 등 ‘진입과 이탈’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이 현상은 BRI가 정치·안보 변수와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달러 중심의 SWIFT·CHIPS에 대응해 2015년 중국은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를 가동하였다. 2024년 10월 기준 CIPS는 직접참여 160개 국가, 간접참여 1,413개 국가로 확대되며, 러시아·중동·동남아 은행을 포괄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는 ‘달러 결제망과 다른 길’을 실제로 포설(鋪設)하는 시도이다.
또 다른 축인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는 다자개발은행(MDB) 형태로 인프라 금융을 공급한다. 2025년 3월 말 기준 승인 회원은 110개(이 중 100개가 정회원)로 공시되어 있으며, 녹색·디지털 인프라 투자 비중을 늘리며 ‘중국 단독’ 이미지를 희석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2018년 상하이 선물거래소의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 개장은 ‘석유=달러’ 공식을 흔드는 상징적 조치였습니다. 이후 사우디·러시아·이란 등과 일부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테스트가 이뤄졌고, 2023년 사우디와의 통화스와프 체결(500억 위안) 등 제도 기반도 보강되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면 대체’보다는 ‘부분적 보완’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 무역의 대규모 달러 생태계, 중동 산유국의 달러화 금융연계가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안화는 과거의 ‘내수 통화’가 아니다. 무역결제, 프로젝트 금융, 대체 결제망, 원유 선물 등 여러 트랙에서 달러 외 선택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준비통화·투자통화로서의 깊이(자본계정 개방, 환율·법치·데이터 투명성, 금융시장 깊이)는 아직 얕다.
중국은 “돈의 원천(발권력)” 대신 “돈의 길(인프라·결제망·표준)”을 깔아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21세기의 통화 경쟁은 금이나 석유보다 데이터·네트워크·신뢰의 싸움에 가까워졌다. 달러는 여전히 제국의 중심이지만, 주변에서 균열을 넓히는 위안화의 발걸음 역시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다음 세 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 결제 비중 vs 준비통화 비중의 ‘갭’ 축소 여부: 무역결제의 확대가 중앙은행의 자산배분(준비통화)로 이어질지
둘째, CIPS-SWIFT의 상호운용성: 대체가 아닌 병행·연계 시 비용·리스크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셋째, BRI 2.0의 질적 전환: 고탄소 인프라에서 디지털·에너지전환 프로젝트로의 이동과 금융의 ‘위안화 표준화’ 진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