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12화

해외규격인증획득은 어려워...

by 이설아빠

“효진 씨, CPNP 인증 그거...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어요?”

도현의 말에 효진은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네,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사전 검토는 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복잡해요. 정부지원사업처럼 그냥 신청서 하나 던지는 수준이 아니더라고요.”

“그렇죠... 저도 검색해 봤는데 유럽은 화장품을 '판매'하기 전에 CPNP 등록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절차가 엄청 까다롭기도 하고.”

“맞아요. 그리고 등록 전에 CPSR이라고 하는 제품 안전성 보고서를 준비해야 하고, 사용된 모든 성분은 INCI 기준으로 정리되어야 해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석은 조용히 책상 서랍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이 업체 추천 드립니다. 제가 예전에 같이 일했던 인증기관인데, 유럽 쪽 화장품 CPNP 등록을 많이 해봤습니다. 연락해서 미팅 잡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며칠 뒤, 인증기관의 회의실에 도현, 기석, 효진이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빔 프로젝트 화면에 다양한 문서들이 띄워졌고, CPNP, CPSR, PIF, MSDS 같은 각종 문서 이름들이 쏟아졌다. 하나하나가 도현과 효진에겐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인증기관 담당자는 인사와 함께, CPNP가 무엇인지 먼저 설명하였다.

"CPNP 등록이란 유럽 화장품 수출 및 제품 판매를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 지정된 시스템에 화장품 정보를 등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분, 패키지, 라벨, 테스크보고서, 안전성 평가 보고서 등을 준비한 후에 R.P라고 불리는 책임회사를 선임해서 시스템에 제출하면 별도의 심사 없이 자동으로 등록이 완료됩니다."

도현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효진이 대신 질문을 던졌다.

"R.P? 책임회사가 뭐예요?"

"EU 내에서 유통되는 화장품에 대한 법적 책임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화장품의 안전성 및 규제 준수 의무를 가지고요. R.P를 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수입자가 보통 R.P가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우선 제품 성분 리스트를 정리해서 INCI 기준에 맞게 정제해야 하는 거죠?”

“맞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분에 대한 원산지, 유해성, 농도까지 포함된 데이터가 필요하고요. 사용된 원료의 안정성 시험 보고서도 있으면 좋고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국내 시험성적서는 안 되는 건가요?”

“대부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기준 자체가 달라요. 특히, 향료나 방부제 사용 시에는 유럽 기준이 훨씬 까다롭거든요.”

회의가 끝난 뒤, 효진은 조용히 말했다.

“이건 그냥 서류 작업이 아니네요… 제품 하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일인 것 같아요.”

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유럽 시장은 소비자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신뢰를 얻기 위해선 서류로 먼저 입증해야 합니다. 말로는 안 통합니다.”

회사로 복귀하는 지하철 안에서 도현은 며칠 전 기석이 설명해 준 해외규격인증획득 절차를 다시 떠올렸다.


기석은 회의실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손에는 마커가 들려 있었고, 화이트보드에는 이미 ‘CPNP 인증 → Cosmetic Europa’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유럽 진출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지금부터 ‘인증’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도현, 효진,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준비했다. 기석은 마커로 1번을 적으며 말을 이었다.

“1. 수출 대상국의 인증 요구사항 확인.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우리가 진출하려는 국가에서 요구하는 인증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유럽이면 CE, CPNP, 미국은 FDA, FCC, UL, 중국은 CCC, CFDA처럼 다 다릅니다. 그리고 분야별로도 다 다릅니다. 화장품, 식품, 의료기기, 전자제품 모두 다릅니다. 그냥 하나만 뚝딱 내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타깃으로 하는 유럽은 전자기기와 같은 경우엔 CE, 화장품은 CPNP가 필수입니다.”

효진이 손을 들었다.

“그런데 이런 정보, 어디서 찾아야 해요?”

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입니다. 일반적으로 KOTRA, 무역협회, 국가표준기술원 같은 유관기관에서 자료를 얻는 게 기본입니다. 그리고 바이어가 직접 요구하는 사양도 꼭 확인하셔야 합니다. 간혹 제품 인증 외에도 포장 라벨이나 향료 성분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이트보드에 2번이 추가됐다.

“2. 적합한 인증기관 선정 및 신청. 다음은 인증을 도와줄 파트너를 고르는 일인데, 아무 데나 맡기면 안 됩니다. 유럽 인증이면 유럽에서 인정받는 인증기관이어야 하고, 특히 CPSR, Cosmetic Product Safety Report 같은 건 안전성 보고서 작성 경험이 풍부한 곳이어야 합니다.”

도현이 끼어들었다.

“경험이 풍부한 인증기관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정형화된 루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정부기관과 같은 공신력 있는 경로를 활용하는 게 그나마 가장 안전합니다. 인증과 관련된 정부지원사업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석은 화이트보드에 3번을 쓰고, 설명을 이었다.

“3. 제품 시험 및 서류 제출. 체력 소모가 가장 심한 단계입니다. 제품 샘플을 제출해서 실제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그 기준에 맞게 성분별 농도, 독성 여부, 내구성, 변질 가능성, 심지어 라벨 글씨 크기까지 모두 체크합니다. 그리고 INCI 기준에 맞춰 전 성분을 정리해야 합니다.”

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제품 성분 중에 농도 모호한 것 있으면, 그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럼 바로 ‘보완 요청’이 들어옵니다. 공급사에 데이터를 요청하고, 다시 테스트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의 무한 반복입니다.”

효진이 끄덕이며 말했다.

“이 단계에서 ‘아무거나’ 대충 넣으면 안 되겠네요. 다 들통나겠어요.”

“맞습니다. 특히, 유럽은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봅니다. 라벨에 허위 정보가 적히면, 통관 거부는 기본이고, 판매 금지 조치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석은 다음 단계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4. 인증 심사 및 현장 실사. 이건 일부 품목에 해당되긴 하지만, 화장품도 의외로 실사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계나 독일계 바이어는 한국 본사 제조라인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때 위생 상태, 공정관리, 생산기록 등을 모두 검토합니다.”

도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처럼 소규모 업체는... 좀 불리하겠네요?”

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록 더 깔끔해야 합니다. 우리가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기준을 낮춰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꼼꼼하게 준비해서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5번을 화이트보드에 적고 기석은 설명을 이었다.

“마지막입니다. 5. 인증서 발급 및 마킹. 모든 게 끝나면 공식 인증서가 발급됩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제품, 포장지, 설명서에 반드시 인증 마크를 표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CE 마크 없으면 유럽 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 정도로 인증 마킹은 무역의 ‘신분증’과도 같은 겁니다.”

효진이 한 장의 CPNP 예시 인증서를 모니터에 띄웠다.

“이걸 바이어가 요구하면, 우리도 저렇게 바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석은 화이트보드 마커를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인증은 단순한 규제 대응이 아닙니다. 브랜드 신뢰도를 입증하는 방식입니다.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이 단계를 회피하면 안 됩니다.”

잠시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도현이 조용히 말했다.

“하나하나 모두 어렵긴 하지만, 결국 이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준비된 제품’이 되는 거네요.”

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제 수출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신뢰'를 제시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인증입니다.”

도현은 펜을 내려놓고 말했다.

“좋아요. 시작합시다. 진짜 유럽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인증은, 정말이지, 고행의 연속이었다. 도현과 효진은 사무실 한편에 인증 준비 워크스페이스를 따로 만들었다. 벽에는 ‘To Do’ 리스트가 적힌 화이트보드를 붙였고, 그 옆에는 각종 마감일이 쓰인 캘린더가 걸렸다.

INCI 성분표 재정리

CPSR 초안

PIF(제품정보파일) 구성

라벨링 규정 점검

번역본 검토 (프랑스어/영어)

서명권자 정보 제출

하나 끝나면 다른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효진은 성분표를 보며 말했다.

“대표님, 여기 있는 이 원료… 천연 추출물인데 정확한 함량이 불명확하다고 나와요. 이거 다시 공급사에 요청해야 할 것 같아요.”

“하... 이런 것도 다시 확인해야 하는 거네.”

도현은 혼잣말이 늘어가고 있었다.

“CPNP에서는 대충이란 게 없어요. 1g이라도 들어간 성분은 전부 신고 대상이에요.”

효진의 설명에 도현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유럽은 소비자를 신으로 여기는 나라네요.”

“그래서 우리도 준비하면서 많이 배우는 거죠. 신뢰를 주는 방식으로.”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기석은 매일 오후, 인증 점검 회의를 주도했다. 기석의 체크리스트는 꼼꼼했고, 때로는 잔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디테일했다.

“효진 씨, 포장지 라벨에 성분 표기 순서 맞습니까? 함량 높은 순으로 나열됐는지 확인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제품에 알러지 유발 성분 없다고 적었는데, 그것도 검증 근거 있어야 합니다.”

“MSDS 문서도 번역해서 보관해두셔야 합니다. 혹시 통관 중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제출해야 합니다.”

도현은 어느 순간, 인증서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이 ‘과정’이었다. 서류를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몰랐던 제품의 디테일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라벨링 하나 바꾸면서 브랜드 이미지의 방향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 실수할까 두려웠던 ‘절차’는 결국 자신감을 주는 어떤 무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효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드디어 사전 등록 통과했어요! 유럽 시스템에 노티피케이션 코드 나왔어요!”

도현은 마시던 커피를 잠시 내려놓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곳엔 ‘Notification Number’가 찍힌 CPNP 포털 화면이 떠 있었다.

“드디어... 휴... 힘들었네요 정말. 고생했어요 효진 씨.”

그 한마디에 효진도, 유리도 박수를 쳤다. 기석은 조용히 말했다.

“이제 겨우 유럽 시장 입구에 섰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도현은 웃었다.

“그래도 서류로 신뢰를 입증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날 밤, 도현은 야근을 마친 후 불 꺼진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우리 브랜드가 이제야 진짜 브랜드가 되어가는 느낌이야.”

노트북을 덮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바쁜 나날 속에서도 이 순간만큼은 뿌듯함이 앞섰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프랑스 파리의 바이어 마티유 드랑과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유럽 소비자는,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만 기억합니다.”

도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분명 기억될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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