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 6개월
뷰티스타 코스메틱 사무실 한편에서 효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대표님, 드디어 됐어요! 프랑스 파리 전시회 단체참가 지원사업에 선정됐어요!”
잠시 컴퓨터 화면을 보던 도현은 놀란 눈으로 효진을 바라보았다.
“정말요? 우리가 신청했던 그 전시회 맞나요?”
효진은 들뜬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마티유 드랑이 언급했던, 바로 그 ‘Cosmetic Europa’에요. 세계 3대 코스메틱 전시회 중 하나! 저희가 한국관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됐어요. 부스 임차료 70%, 해상 운송비 100%, 통역비 50%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요.”
효진의 말을 듣고 옆자리에서 작업 중이던 유리가 박수치며 말했다.
“와, 대박이에요! 'Cosmetic Europa'면 진짜 유럽 바이어들이 쏟아진다던데, 이번엔 제대로 한 방 보여줄 수 있겠어요!”
도현의 얼굴에도 천천히 미소가 퍼졌다. 그의 눈빛엔 놀라움과 안도감, 그리고 책임감이 뒤섞여 있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전시회 참가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네요.”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효진 씨, 한 선생님께 연락드려서 전시회 준비에 필요한 목록을 정리해 주세요. 우리 쪽이 챙겨야 할 항목, 물류 일정, 포장 단위도 다시 검토하고요.”
유리는 이미 메모장을 열어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적기 시작했다.
“대표님, 이번엔 정말 달라요. 프랑스 바이어들이 원하는 인증도 이제 모두 갖췄고, 디자인도 유럽 스타일로 리뉴얼 중이니까요.”
“맞아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 제품을 유럽 시장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Europa Cosmetic'이 바로, 우리의 진가를 보여줄 무대일 거예요.”
그의 말이 끝나자 사무실 공기마저 달라진 듯했다. 팀원들의 눈빛에 불이 들어왔다. 효진은 자료 폴더를 열며 준비 리스트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유리는 샘플 박스를 들고 디자이너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순간, 뷰티스타 코스메틱은 단순히 전시회에 참가하는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유럽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문 앞에 선, 작지만 당찬 도전자였다. 팀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맡으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힘내서 준비해 봅시다!”
도현이 말을 하는 그 순간, 사무실 문이 갑자기 열리며 백상무가 등장했다.
“어? 백상무님?”
느닷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백상무를 본 도현은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오전 회의가 끝나고 막 자리로 돌아와 커피를 내리려던 참이었다. 팀원들 모두가 자리에 있던 것도 아니었다. 전시회 준비로 다들 흩어질 준비를 하고 있어 사무실은 어수선했다.
“정말 바쁘게 사는구먼. 김.대.표.님.”
백상무는 비꼬듯 특유의 쓴웃음을 지으며 테이블에 놓인 카탈로그를 흘긋 쳐다보았다. 그러곤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전시회도 나가고, 인증도 받았다고 들었어요.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슬슬 결과물이 나올 때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투가 단번에 차가워졌다.
“수출 실적은?”
도현의 머리가 순간 하얘졌다. 그날이 오늘이었다. 약속했던 6개월. 본격적인 투자 유예 기간이 끝나는 날. 전시회 준비, 제품 개선, 인증 취득 등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지나가며 그는 이 중요한 마감일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저… 아직 계약서는 없지만, 진행 중인 건이 있어요. 프랑스 바이어와 후속 미팅도 앞두고 있고요.”
“이봐요, 김.도.현.씨.”
백상무는 냉정하게 끊어 말했다.
“나는 기다릴 만큼 기다렸어. 실적이 없으면, 투자 철회도 검토해야지.”
도현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기석이 강조했던 계약의 무게, 시장의 냉혹함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백상무님, 6개월만 더 주세요.”
도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번엔 정말입니다. 계약서 하나, 꼭 만들어내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백상무는 도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좋아. 단, 이번엔 조건이 하나 더 있어야겠지?”
그는 손가락을 들어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계약서 1건 이상. 그리고 추가로 최소 수출 계약 금액은 총합 5천만 원 이상. 그 정도는 되어야 의미가 있지 않겠어?”
계약 금액이 명시되는 순간 도현은 얼어붙었다. 어떻게 해야 되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도현이었다. 그리고 마티유 드랑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 거기서 계약이 체결될 가능성도 있었다.
“네. 그 조건, 받아들이겠습니다.”
도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회의실에서 나온 도현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기석까지 포함하여 전원이 회의실에 모였다.
“여러분,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도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꺼냈다.
“6개월 전, 백상무님과 약속했던 수출 실적 기한이 바로 오늘이었어요. 깜빡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다들 아시겠지만, 아직 결과를 내지 못했어요. 방금 백상무님이 다녀가셨고, 제가 6개월 유예를 추가로 요청했어요.”
회의실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대신 조건이 더 붙었습니다.”
도현은 팀원 한 명 한 명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계약서 1건 이상, 최소 계약금액은 총합 5천만 원 이상. 6개월 안에 이걸 달성하지 못하면... '뷰티스타 코스메틱'은 더 이상 존속이 힘들 수도 있어요.”
효진이 입을 열었다.
“하... 수출 계약 1건도 힘든데, 금액이 5천만 원 이상이라고요?”
도현은 고개를 떨구며 말을 이었다.
“네, 맞습니다. 백상무님은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하셨어요.”
유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근데요, 대표님. 그 5천만 원짜리 계약… 저희 지금 가능성 있는 바이어가 있나요?”
“프랑스 쪽 바이어와의 미팅이 다음 주에 예정되어 있어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니, 프랑스 파리에서 반드시 성사시킬 겁니다.”
기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오히려 조건이 명확해졌습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효진이 다시 말했다.
“대표님만 포기하지 않으면, 저희도 안 무너져요.”
순간 도현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래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목표는 단 하나, 계약서 1건 이상, 금액은 5천만 원 이상.”
그날 이후, 사무실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효진은 프랑스 현지에서의 바이어 미팅 자료를 다시 정리하고, 홍보 영상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유리는 제품 패키지와 포장재 샘플을 다시 뽑아, 유럽 규격에 맞춘 디자인 수정 시안을 들여다봤다.
“포장 단위를 좀 줄이면 물류비가 절감되겠네요.”
“그리고 이 인증 마크, 프랑스 바이어들이 신뢰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 로고로 바꾸는 게 어때요?”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전과는 달랐다. ‘살아남기 위한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도현은 기석과 함께 매일 아침 9시 30분 회의를 시작했다. 신규 바이어 리스트를 뽑고, 영문 계약서 예시를 검토하고, 바이어 유형별로 협상 전략을 짰다.
“한 선생님, 만약에 바이어가 제품 가격을 10%만 낮춰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죠?”
“단가를 조정하지 말고, 물류비 절감 조건을 걸면 됩니다. 예를 들어 FOB 조건에서 EXW로 바꾸고, 운송은 그쪽이 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마진은 유지되네요?”
“그렇습니다. 협상은 물건값이 아니라 조건값입니다.”
이처럼 팀원들은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전시회 준비에 몰두했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뷰티스타의 성공적인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2주 후, 도현은 프랑스 바이어 마티유 드랑과의 2차 온라인 미팅을 위하여 회의실에 앉았다. 노트북 화면을 켜놓고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심장은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켰다. 익숙한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Bonjour, Mr. Kim.”
(봉주르, 김 대표님.)
“Bonjour, Mr. Dran. Thank you for joining us again.”
(봉주르, 미스터 드랑. 다시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현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Mr. Kim, I hope you've been well. Any updates on your end?”
(김 대표님, 잘 지내셨길 바랍니다. 그쪽 소식은 어떤가요?)
“Actually, yes. I have some exciting news to share. BeautyStar has officially confirmed the participation in the upcoming 'Cosmetic Europa' exhibition in Paris. We've secured a spot in the Korean Pavilion.”
(사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뷰티스타가 이번 파리에서 열리는 '코스메틱 유로파' 박람회에 공식적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관 내에 부스를 확보했습니다.)
마티유 드랑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That's fantastic news! 'Cosmetic Europa' is a significant event in our industry. Your presence there will undoubtedly open many doors.”
(정말 멋진 소식이네요! ‘코스메틱 유로파’는 우리 업계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입니다. 귀사의 참가가 분명 많은 기회를 열어줄 거예요.)
“Thank you. We believe it's a great opportunity to showcase our products to you again. We're currently preparing our booth design and marketing materials to ensure we make the most of this event.”
(감사합니다. 이번 박람회는 저희 제품을 다시 한번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부스 디자인과 마케팅 자료를 준비 중이며, 이번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하고자 합니다.)
“Excellent. I'm looking forward to visiting your booth with my boss and discussing potential collaborations in person.”
(훌륭하네요. 제 상사와 함께 뷰티스타 부스를 방문해서 직접 협력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Likewise, Mr. Dran. We'll coordinate our schedules to arrange a meeting during the exhibition.”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스터 드랑. 박람회 기간 중 일정을 조율해서 꼭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화면이 꺼지는 순간, 도현은 비로소 한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굳어있던 어깨가 풀리며,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심장의 고동이 조금씩 진정되며,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휴, 무사히 잘 마쳤다, 프랑스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잠시 숨을 고른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도현은 팀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방금 마티유 드랑과의 화상 미팅을 마쳤어요. ‘Cosmetic Europa’ 전시회 참가 확정 소식을 전했고, 마티유 드랑도 굉장히 반가워했어요. 자기 상사와 함께 우리 부스를 직접 방문하겠다고 했어요.”
순간 사무실 안에 짧은 정적이 흘렀고, 곧 유리가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와, 진짜요? 대박! 마티유 드랑이 상사와 함께 온다는 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신호겠네요?”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기회네요!”
효진도 들뜬 얼굴로 소리쳤다.
도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단호했다.
“맞아요. 이번 전시회는 우리가 유럽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는 첫걸음이자, 백상무님과 약속한 계약을 위한 절박한 무대예요.”
그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우리에게 이번 전시회 참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에요.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고, 해내야만 합니다.”
효진과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겁니다. 이번 전시회, 절대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자, 다시 시작합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