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학부모 갑질 문제나 성별, 지역, 세대, 종교 등과 관련된 각종 혐오 사건들,그리고 그 사건에 등장하는 진짜 제정신인가 싶은 인간들의 심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편안히 읽기에는 마음이 조금 괴롭다. 때론 뜨끔하기도 섬찟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의 이유에 대해 납득하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인 <지위 게임>은책 전체내용을 아주 잘 축약한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삶은 '지위 게임'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더 높은 지위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을 배격하는 과정이라는 것.
저자는 인생은 게임이며, 게임의 숨은 규칙은 우리의 내면에서 생각과 행동을 비밀스럽게 조종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원시 시대부터 지금의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생존과 연결되어 우리를 무의식적으로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소속된 집단에서 지위를 얻고자 하는 욕구'라는 것.
과거부터 사회적 지위는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했기에, 그러한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좋은 음식과 비옥한 땅, 더 나은 배우자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 자녀들에게도 더 나은 사회적 기회가 부여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유전자에 깊게 새겨지게 된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회적 지위가 실제 건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결과는 다소 충격이었다. 가끔 회사를 퇴직한 분들을 만나 뵈면 그새 많이 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아마 이런 이유였나 싶다.
"(36p) 마이클 마멋 박사는 지위 게임이 건강에 끼치는 놀라운 영향을 밝혀냈다. 40~64세 사이의 최하위급 직원들은 최고위급 관리직보다 사망 위험이 4배 높다. 지위 게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건강이 나빠지고 수명이 줄어든다."
한편, 뇌의 보상체계가 절대적 보상보다 상대적 보상이 주어질 때 더 많이 활성화된다는 연구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그냥 더 많이 얻을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보다 더 많이 얻을 때 가장 행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다.
기시감이 드는 사례하나도등장한다. 미국의 한 교통경찰이 창문을 짙게 선팅한 차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운전자가 보험이 없었고 차량등록 절차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차량을 압수하려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통경찰에게 자신이 항만 당국 감독관이며 자기 밑으로 경찰관 4천 명이 있음을 말했던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심지어 그 차에 타고 있던 자신의 자녀들이 MIT와 예일대에 다니고 있음을 말하며 경찰의 부당함(?)을 읍소했다니 헛웃음이 날 정도다.
지위에 대한 감각을 도전받게 되면, 원시 시대 때부터 우리 뇌에 새겨진 원시적인 짐승의 본능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현대 사회의 이성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 짐승의 모습으로 변해, 가장 몸집이 크고 강력한 자가 모두를 지배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위와 같은 유치한 대응을 하게 된다는 해석.
한편, 이 책은 지위 게임의 형태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 번째는 힘이나 두려움을 무기로 지위를 차지하려는 '지배 게임'. 두 번째는 남들이 의무감이 강하고 손종적이며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지는 '도덕 게임'.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기술이나 재능, 지식이 필요한 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지위가 돌아가는 '성공 게임'이다.
중요한 사실은 실제 삶에서는 이 3가지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혼재된 상태의 게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능력이 있고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 명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영향력을 늘려가려 한다는 데에 있다.
정반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인생이 '지위 게임'이라면, 지위를 완전히 박탈당하게 되어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자각이 끊임없이 든다면 어떻게 될까. 이 책에서 모욕감은 지위와 지위를 얻는 능력을 철저히 박탈당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로 본인의 지위를 박탈당한 이후, 세상과 전쟁을 벌이며 잘못된 방식으로 지위 욕구를 채우려 했던 비행기 폭파범과 연쇄살인범의 사례를 보여준다.
지위 욕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설계된 SNS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는 'SNS는 지위를 위한 슬롯머신'이라고 말하는데, 도박하는 사람들이 슬롯머신에서 얼마가 나올지 알 수 없듯이 SNS도 어떤 보상을 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사진이나 동영상을 SNS에 올리고 댓글을 달 때마다 '좋아요'나 추천, 댓글을 통해 평가를 받을 때의 불확실성)이 사람들에게 SNS 강박을 만들어낸다는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온라인 군중과 평판 살해행위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만들면, 양 쪽으로 나뉘어 다른 편을무자비하기 비난하거나, 수백수천만의 익명의 대중들이 한 사람의 연예인이나 특정 인물을 무자비하게 헐뜯고 매장시킨다. 평판을 살해하는 행위인 것이다.
"(242p) 희생자의 지위와 상징을 최대한 제거하려 하고 가장 이상적인 목표로 평판을 죽이려 한다. 명성의 게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새로운 살인 방법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보다, 명예에 대한 욕심, 내 주변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욕망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이 책에서 말하는, 지극히 더 높은 지위를 추구하는데 충실한 한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너무 한 가지 요인으로만 해석했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읽기를 강추한다. 나의 솔직한 속내를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