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경로로 추천받은 이 책을 지난 주말에 정독했다. 이 책은 '노년내과'라는 다소 생소한 전공을 하신 의사 분께서 쓰신 책이다. 하지만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해서 전부 의학적인 내용만 담겨있지는 않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다독을 해온 저자의 역량이 눈에 띄는 책이다.
이 책에는 철학, 종교, 자기계발, 기후변화, 거시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들이 나올 뿐만 아니라, 카를 마르크스의 사용/교환 가치 개념과 경제학 수업에서 배우는 이전소득, 베블런재 등의 용어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사회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식견은 이 책에 대한 공감과 신뢰를 더 높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노화'라는 현상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어떤 한 사람의 신체적인 측면만 볼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 좀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2가지 내용으로 나뉘는데, 1) 현대 사회에서 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를 분석한 파트와, 2) 되도록 천천히 노화를 진행시키기 위한 실천방법을 이야기한 파트가 그것이다.
#1_당신의 삶이 노화를 결정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부터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폐단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작금의 사회 현실은 고통을 최소화하고 쾌락의 양을 쉽게 최대로 늘리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저자는 고통과 불편이 줄어들수록 좋다는 전제가 옳다면 지금쯤 모두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한다. 그리고 그러한 전제를 부정하면서, 불편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 자체가 바로 노화를 가속화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동안 나도 행복해져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매몰되어, '고통보다는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이 아닐까'라는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그런 생각은 패배주의적인 사고방식인 동시에, 노화를 가속시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초가공식품을 먹으며 운동을 하지 않아 생기는, 현대인의 가속노화 사이클 악순환에 대해 무서울 정도의 팩트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당부하가 높은 식품을 먹으며 발생하는 중독과 보상(도파민)의 실체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꾸짖는다.
(36p) "결국 쾌락의 총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틀렸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쾌락의 총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비만 늘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져 고통을 받고, 가속노화 사이클에 빠져서 더 빨리 아프고 더 오래 고생하게 될 뿐이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저자 본인의 경험담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렇다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다.
(38~39p) "개인적으로도 도파민 자극원 목록을 만들면서 일상에서 술과 커피를 줄였고 스마트폰을 덜 사용했으며 단순당, 정제곡물, 초가공식품을 덜어냈다. 그렇게 생겨난 물리적, 정신적 틈새에 이 책의 뒤에서 살펴볼 일상의 활동들을 채웠다. 그렇게 약간의 불편과 따분함을 3개월 이상 일상생활에서 실천한 결과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편안하게 호흡과 자세에 집중하면서 뇌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삶에서 쾌락을 주는 자극을 대부분 털어냈는데도 일상의 즐거움은 지속됐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는 줄어들면서 내면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중략) 나를 잠식하던 스트레스의 지분이 점점 줄어든 것이다."
#2_천천히 늙기 위해서는 내재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 책에서는 노화를 천천히 진행시키기 위해 유지해야 할 내재역량의 4가지 축을 소개한다. 이동성(육체), 마음건강(정신), 건강과 질병, 삶의 목표가 바로 그것들이다.
많은 유익한 내용들이 있지만, 책을 읽으며 밑줄 그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동성) 자세를 바르게 유지하고, 운동을 습관화해라. 노후를 위한 최소한의 운동량은 한 번에 30분 이상 고강도 운동을 꾸준히 주 2회 이상 하는 것.
(마음건강) 마음챙김 훈련을 통해 마음건강을 다스리고 몰입 환경을 조성해라. 수면시간은 반드시 사수할 것.
(건강과 질병) 진짜 문제는 뚱뚱한 것이 아니라 근육이 너무 빠져버린 것이다. 단순당, 정제곡물, 술은 가속노화 체형을 만드는 고성능 연료이니 절대 피해라. 술과 담배는 끊어라. 술을 끊고 보상회로가 정상화되어야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몸과 마음에 이로운 여러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삶의 목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생각의 격자를 만드는 것이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행위이다. 나에게 맞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생활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돈과 시간의 여유를 마련하라.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내 나름대로 정리한 이 책의 핵심은 "행복만 추구하면 노화가 가속된다. 그러니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노화를 늦추기 위해 생활습관을 바로 잡아야 한다."로 결론지을 수 있을 듯하다. 결국 불편해야,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천천히 늙는다.
이 책을 읽는 목적이 노화를 느리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 목적 이상 초과 달성이 가능한 책이다. 노화를 느리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방향성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새롭게 조망하고 개선할 수 있는 팁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
내가 이 책을 여러 경로로 추천받은 것처럼, 내 주변에도 일독을 권해볼 참이다. 그리고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자기 합리화를 경계하기 위해, 저자의 준엄한(?) 꾸짖음을 공유하며 이 리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191p) "자신은 이미 늦었으니 즐겁고 편하게 살다가 죽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이런 자세는 자신에 대한 폭력일 뿐 아니라, 고장난 자신을 상당 기간 돌보아야 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무책임한 테러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