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의 생활천재들

제4장 생활바보, 눈을 뜨다 (4)

by Ryan Choi

내 우울감의 원인을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자기계발은 잠시 쉬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1도 하지 않았던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하니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잡념도 덜 생기고, 몸이 건강해지니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


나 자신만 들여다보던 시선도 이제 바깥으로 방향을 돌렸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사실 그동안 와이프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객관적으로는 훌륭하지 않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배경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군대에서나 마주쳤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만 하고, 직장을 다닌 이후에는 내 커리어에만 많은 신경을 썼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일상에서의 역할에는 소홀했다. 와이프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도맡았다. 와이프가 종종 "이런 것은 다른 집에서는 남편들이 다 한다는데 내가 왜 해야 되는 거야."라고 투정 섞인 잔소리를 하곤 했지만, 나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다며 회피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이 모든 것들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부를 잘하는 것,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회사를 다니는 것,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 당연히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한,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며 꼭 필요한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생활천재'들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처럼 나 자신을 매일같이 들들 볶으며 힘들게 애걸복걸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감사하며 일상의 행복한 순간을 누리며,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삶.


그렇다. 그들은 나와 다른 '생활천재'였다. 그들에게는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과일을 깎지 못한다. 그동안은 부모님이, 와이프가 사과며, 배며 다 먹기 좋게 깎아주었기 때문이다. 난 깎아놓은 과일을 먹기만 했다. 곱게 자란 도련님이었다. 스스로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난 내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동차 관리도 잘하지 못한다. 집안 수리는 더더욱 못한다. 형광등 교체도 한참 동안 미뤄두었다가 겨우 한다. 센스 있는 말과 행동도 잘하지 못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있으면 어색하다. 유머? 스몰토크? 노력은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다. 유머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도한다거나 하는 일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나마 하는 것은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것 정도다. 공부는 그래도 잘한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생활바보'에서 벗어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공부가, 커리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알게 되었다. 깎아놓은 사과만 얌체같이 쏙쏙 빼먹는 삶이 아니라, 가족을 꾸리고 돈을 벌고, 내게 주어진 일상의 몫을 다하며, 매순간의 행복함을 누리는 삶, '생활천재'의 삶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나와 다른 그들을 이제 '생활천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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