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yan Choi
Dec 30. 2022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박찬국 저 | 21세기북스
"서가명강 시리즈"는 한 손에 들어가는 문고판 사이즈인 데다, 쉽게 쓰여 있으면서도 내용이 알차 출퇴근길에 종종 읽는 책 중 하나이다. 특히 낯선 분야에 대해 새롭게 알아보고자 할 때 입문서로서 활용하기 적합하다.
그동안은 "서가명강 시리즈" 중, 이관휘 교수님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고학수 교수님의 <AI는 차별을 인간에게서 배운다>, 조성준 교수님의 <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 등과 같은 경영, 경제, 데이터 분야의 책만 주로 읽어봤었는데, 이번엔 새로운 분야의 책을 꺼내 보았다. 아마도 요즘 고민이 많았던 탓인지, "사는 게 고통일 때"라는 제목이 유독 눈에 띄었다.
책 내용 중 인상 깊었던 5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치열하게 인생의 고통에 대해 탐구한 쇼펜하우어의 생각과, 삶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는 기상천외한 비유,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한 박찬국 교수님의 설명을 함께 보고 나면, 괴롭게만 느껴지던 내 삶과 화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분들에게 올해를 마무리하며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본다. 지적인 체험을 하며, 새해를 맞이할 의지를 되찾는데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1_욕망은 절름발이를 어깨로 메고 가는 힘센 장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처럼 욕망은 이성을 통해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한테 "이성을 찾아라."라고 조언하듯이.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이성은 욕망을 통제하는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원되는 욕망의 노예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욕망은 절름발이를 어깨로 메고 가는 힘센 장님'으로 비유한다. 장님은 앞을 볼 수 있는 절름발이를 어깨에 메고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목표 지점을 말해주면, 절름발이는 그 장소로 장님을 안내한다. 이때 절름발이는 '이성'을, 장님은 '욕망'을 가리킨다. 즉, 욕망은 우리 삶에 목표를 부여하는 존재로, 이성은 그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도구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행복'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행복은 욕망을 충족하지 못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일시적으로 없애주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하며, 고통이 사라짐과 동시에 거의 의식할 수 없다. 반면 욕망은 행복에 의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겨나며 그에 따른 결핍과 고통은 우리의 의식을 계속 괴롭힌다.
공감가는 말이었다. 나 역시도 내 욕망이 어느 정도 채워진 평온한 상태는 쉽사리 의식하지 못했었다. 반면에 어떤 문제가 생겨 욕망의 충족이 안 되는 순간이 오면, 이를 강하게 의식하고 괴로워했다. 행복보다는 고통을 더욱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와 저자의 말처럼,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능한 한 제거할 수 있도록 애써야 행복한 인생, 고통 없이 견딜만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쾌락은 욕망의 충족과 함께 사라지는 순간에 불과하지만 고통은 오랫동안 계속될 수 있기에.
#2_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설령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해도 인생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충분한 부를 누리게 되면, 평온한 행복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권태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자극적인 것을 찾아 나선다. 결국 그 누구에게나 사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고통보다는 권태가 더 나을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며 나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부족한 것이 없어 권태로움을 느끼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쇼펜하우어와 저자는 고통도 극심한 고통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지겨움과 공허함. 그리고 이것을 이겨내기 위한 자극이 필요하게 되면, 잔인하고 부도덕하며 자기 자신을 망치는 광기 어린 행동마저 서슴없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인간은 적당한 고통과 고난이 필요한 것이다.
공감이 갔던 또 하나의 내용은 바로 '시간'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리는 더 좋았던 과거를 생각하며 현재의 평안함을 사소하게 생각한다. 또 지금의 상태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현재의 행복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면서, 그리고 견디기 쉬운 불행과 비교적 가벼운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죽음으로 끝날 인생을 인생이 가끔 던져주는 쾌락에 속아서 살아갈 뿐이라고 말이다.
#3_인간의 3가지 욕망과 사랑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욕망이 결국 3가지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첫째는 자기보존 욕망, 이 욕망은 '식욕'의 형태로 표현된다. 둘째는 종족보존 욕망, 이 욕망은 '성욕'으로 표현된다. 셋째는 권태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이는 재미를 추구하는 욕망으로 표현된다.
욕망의 강도는 자기보존 욕망보다 종족보존 욕망이 더 크다고 지적하였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 욕망을 이겨내면서까지도 자신의 자식들에게 모든 희생과 헌신을 다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성욕의 충족을 위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의 가장 강렬한 감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자기보존 욕망보다 더 강력한 욕망인 종족보존 욕망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4_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와 행복을 찾는 방법
쇼펜하우어는 고통의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럼에도 쇼펜하우어는 욕망의 늪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고 보았고 이성이 욕망의 지배를 받기도 하지만 욕망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 욕망을 부정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원래 입장이었던 '이성은 욕망의 도구'라는 주장과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한다.) 이것은 자신이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성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욕망에 완전히 지배되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쇼펜하우어와 저자는 행복을 찾는 방법을 크게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성격의 중요성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눈앞의 문제가 해결되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자기 자신의 고통과 행복의 총량은 외부 환경과 무관하게 성격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주어진 성격에 따라 동일한 세계를 달리 보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타고난 성격을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후회'라는 것도 우리의 성격이 변해서가 아닌, 인식이 변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후회는 우리가 자신의 성격을 모르고 성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후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자신의 성격에 맞는 일과 생활을 하며,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둘째, 인생에 있어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강렬하게 기뻐하는 것은 이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가리라 생각하면서 합격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며,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죽을 때까지 자신이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큰 슬픔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셋째, 사물에 대한 '심미적 관조'의 자세다. 이성이 욕망을 위해 일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사물과 세계를 호젓하게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다 보면, 안식과 평안의 상태를 경험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행복의 상태라고 말한다.
#5_욕망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
책을 읽다 보면, 마지막 챕터에 욕망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과 은총,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 인도 철학 등과 같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욕망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음 역시도 마찬가지다. 쇼펜하우어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며 죽음이 축복이라고 말했지만, 살려는 의지에 대한 영원한 해방은 불가능하다. 자살 또한 삶에 대한 의지의 부정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오히려 더 강한 삶의 의지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욕망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에 있지 않다. 그리고 일상의 삶의 고통과 허망함을 처절하게 일깨워 체념하라는 것도 아니다.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자각하면서 이러한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
고통이 삶의 본질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인정해야,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기에... 삶의 어두운 면에 끈질기게 천착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삶을 다시 시작할 희망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