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랑 비밀번호가 중요한지 이제야 알았어
오늘은 목요일 밤이었습니다. 자기 전 부엌에서 엄마와 떠들고 있는 제 옆으로 아빠는 핸드폰과 안경을 챙겨 걸어옵니다.
아빠: 승인받으려면 비밀번호하고 아이디 두 가지가 있어야 하잖아?(머쓱한 태도로 물어보며)
나: 승인받는다는 게 뭔지 모르겠는데.. 아이디하고 비밀번호는 로그인할 때 필요해.
아빠: 로그인할 때.. 흠..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는 못 바꾸잖아?
나: 아이디는 못 바꿔.
엄마: (방에서 소리치며) 아이디는 못 바꾸고 비밀번호만 바꿀 수 있어~!!
엄마는 아빠보다 디지털 관련 더 문외한이지만 항상 우리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제가 했던 말을
아빠에게 반복해서 말합니다. 왜 그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빠: 아이디하고 비밀번호 처음에 가입한다고 하나..? 그런 거를 잘 안 해봐서 모르겠어.
나: 응, 가입할 때 맞아. 근데 지금 네이버랑 유튜버 다 가입되어 있잖아. 또 가입할 곳이 있어?
아빠: 처음에 비밀번호 아이디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어. 하다 보니까 알았지. 근데 보면 네이버라든지
국세청이라든지 보면 이게 다 제각각이란 말이야? 아이디를 통일을 시키고 비밀번호만 다르게 사용을
해볼까 하는데 그건 어때? 아이디는 구글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야 되잖아? 비밀번호도 구글 다녀와야 되나?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아빠가 바라보는 인터넷 세상은 얼마나 방대할까 싶습니다. 가지고 있는 개념자체가 없기 때문에 온라인을 별천지로 본다고 느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맹신하기 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한 어투로) 아이디고 비밀번호고 구글이랑 상관이 없어. 네이버는 네이버에서만 하는 거야.
아빠: 근데 내가 언젠가 뭐 하다 보니까 거기서 구글이 나오고 막 그러대? 은행 계좌비밀번호를 바꾼 적이
있었는데 구글이 나오고 하더라고.
나: 아빠 신한은행 계좌랑 구글이랑은 정말 관련이 없어..
아빠: 그래? 그래서 내 생각에는 중요한 걸 바꿀 때에는 구글이 그 통신계의 본사라고 그래야 하나?
나: 그거 아니야.. 한국에서는 네이버 쓰고 미국에서는 구글 써. 그게 다야. 구글이 네이버보다 대빵이고 그런 거 없어~
사실 어느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아빠에게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논지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단순하게 말해야 합니다.
아빠: 그렇구나.. 근데 이걸 하다 보니까 아이디랑
비밀번호가 이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어.
나: (어이없는 목소리로)아니 근데 그걸 어떻게 지금 알았어? 한 지가 몇 년인데..
아빠: 어저께는 네이버를 찾아봤는데 맘에 들지가 않아. 그래서 그 뭐야.. 채 뭐야.. 인공 아이디(?) 들어갔더니 그게 좀 낫긴 낫더라. 좀 자세하게 얘기를 해줘.
정말 뿌듯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피티 존재에 대해지난주에 알려줬는데 혼자 사용한 아빠를 생각하니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빠: 그래.. 일단 나한테 제일 중요한 건 아이디하고 비밀번호를 수첩에 정리해 놓는 거야.
나: 아니, 맨날 적더니 다 어디에 간 거야? 다 어디 갔어?
아빠: (멋쩍게 웃으며) 있긴 있지 하하. 달력에 있긴 있는데 해보면 또 안 맞아.
나는 아빠처럼 못 했을 것 같아.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살기란 너무 힘든 세상이니까. 나는 30대인데도 어떤 시험을 준비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부터 따지게 돼. 유튜브에는 어느 시험이고 평균 며칠이 걸리면 통과인데 나는 얼마 걸렸다 하는 영상이 수두룩 해. 나를 돌아보면 항상 남들보다 빠르게 통과됐던 적이 없어. 결국 끝에 끝까지 가서 겨우 했거든. 근데 결과적으로는 쓸데없는 곳에 시간과 돈을 안 썼더니 좋은 결과를 얻었어. 신기하지? 이렇게 보면 아빠딸이 맞나 봐. 아직 사이트에 가입은 못하지만 혼자서 어플로 자동이체하는 아빠를 보면 성장이 눈에 보여서 뿌듯해. 쉽지는 않겠지만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 쿠팡에서 혼자 주문할 때까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