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필요한 거냐고
언니가 한국에 머물었던 짧은 시간 동안 미뤄오던 짐 정리를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도대체 왜 온갖 물건을 쟁여두고 사는 걸까요? 용도에 필요한 물건은 한 개만 있으면 된다는 걸 백번은 설명했지만 아직도 이해한 것 같진 않습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건들은 당근을 통해 처리하였는데 언니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주말 당근은 저에게로 임의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빠가 당근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어김없이 아빠의 질문이 날아옵니다.
아빠: 이 당근마케트에서 돋보기.. 를 몇십 배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거 있어?
나: 왜 당근 마켓(그냥 당근인데 저도 아빠에게 스며들었나 봅니다)에서 사야 돼?
아빠: 거기가 싸잖아!
나: 당근마켓이 뭔지 알아?
아빠: (어이없어하며) 아니 중고품들 싸게 파는 데가 당근마케트잖아~!
나: 별 차이 안 나. 그냥 쿠팡에서 사. 당근 마켓은 귀찮아.
아빠: 귀찮아? 나가서 사 오고 그래야 하니까?
나: 그래야 되고 만나기 전까지 연락도 해야 되고 그 제품이 올라왔나 계속 봐야 되고
아빠: (고민하더니)흐음.. (돋보기를 가져오며) 요런 거는 이게 몇 배 이런 게 안 나와있어~ 이게 몇 배 정도 되나 봐 봐.
나: 아무것도 안 쓰여있는데 뭘 보라는 거야?
아빠: 다이소에서 살 적에는 크게 보이니까.. 근데 저 돋보기를 실물로 쳐다보고 이렇게 하고 사야지 정상인데.. 그렇게 살라면 어디 가야 하나~?
나: 아빠는 어느 정도의 돋보기를 원하는 건데? 크게 보이는데?
아빠: 큰 글씨~ 아니 선명하게 잘 안 보여
나: 뭘 얼마나 더 선명해야 하는 거지..?
아빠: 아니 이런데..(은행 어플 안 작은 광고글씨들을 가리키며)
나: 아니 이걸 왜 봐야 돼..? 이건 볼 필요가 없지
아빠: 이런 게 잘 안 보이니까
나: 어느 버튼 눌러서 이체하는지만 보면 되잖아
아빠: 보면 도움이 되겠지
나: (짜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뭔 도움이 돼~!! 아니 아빠가 필요하면 사줄게, 돋보기.
아빠: 그니까 한몇십 배 확대되는 걸 사면 이런 게 잘 보일까?
나: 내 생각에 몇십 배까지 필요 없을 거 같은데. 그냥 일반 돋보기 사면 될 거 같은데
아빠: 아니 안경점에서 돋보기안경을 팔잖아. 그런 것도 잘 안 보인다고. 돋보기 전문점 같은 데가 있어?
나: (지친 목소리로) 아빠가 찾아서 봐봐.. 돋보기 전문점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빠에게 쓰는 편지>
진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는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의 스펙트럼에 서있지는 않아. 자신이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잖아. 버스탈 때는 세균이 묻는 게 싫어서 위생비닐장갑을 끼고 타잖아. 그리고 전에 복면 같은 걸 뒤집어쓰고 나간다길래 내가 밖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거라고 하니까 "내가 추운데 남들이 뭔 상관이야~!"라고 했지. 뭐라 할까.. 내가 아빠보다 덜 살았지만 내가 경험한 세상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었어. 알 필요도 없고. 그냥 그렇게 굴러가더라고. 필요한 것만 해서 그때만 넘기면서 돌아가더라 세상 일들이란 것이..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고 모든 걸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해. 아마도 아빠는 '이 글씨가 올라온 이유가 있겠지. 그냥 넘길 수는 없어.'라고 생각했지 않을까? 아빠의 로직은 자본주의에 맞지 않을 때가 맞고 그때마다 아빠가 혼란스러워하는 게 보여. 이것과 관련해 할 얘기가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