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가 뭐라고 그래 들 진짜
일요일 오후, 좋아하는 팀의 배구경기가 있어 보고 있었습니다. 티브이를 보는 제 등 뒤로 엄마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얘기에 귀 기울여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제사와 관련해 언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자주 투닥거리기는 하지만 오늘은 심상치 않다 싶어 중간에 티브이를 끄고 이야기에 관여했다가 아빠의 논리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배구 경기는 어느새 5세트에 접어들어 집중해서 보고 있던 중 아빠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아빠: 이거 클립보드 복사하면 어떻게 하는 거냐?
나: (경기 보느라 다급한 목소리로)그럼 붙여 넣기를 해야지!
아빠: 붙이기를 해야 돼? 그냥은 못 봐?
나: 그냥 보는 거는 다운로드를 해야지.
아빠: 다운로드는 어떻게 하는데?
나: 나 지금 중요한 경기라 이거 보고 설명해 줄게. 끝나면 화면을 보여줘.
아빠: 저게 뭐가 중요해. 클립보드가 더 중요하지.
나: 이것 봐. 각자 다 상황이 달라. 제사 관련해서 얘기할 때도 엄마랑 아빠가 상황이 달랐잖아. 나는 클립보드보다 이게 더 중요해.
아빠의 말은 장난이 섞여있긴 하지만 진심이었을 겁니다. 엄마랑 한참을 큰 소리로 얘기하고 나서도 클립보드에 대한 질문을 하다니.. 우리 아빠는 정말 엄청난 사람입니다.
(배구 경기가 끝난 후)
나: 아까 물어본 거 뭐야? 화면을 보여줘 봐.
아빠: (멋쩍게 웃으며)이게 연출이 다시 안되네.. 아니 뭐 찍으면은 클립보드에 복사 뭐 이런 게 나온다고.
나: 그니까, 아빠가 복사를 눌렀다는 거잖아? 그러면 어딘가에 붙이기를 해야 돼.
아빠는 아직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아빠: 그러면은 바로 사용을 해야 하나 봐.
나: 유튜브에서 그랬어?
아빠: 유튜브에서 그랬나 네이버에서 그랬나..
나: 흠.. 네이버 한번 들어가 봐. (아무 기사를 클릭한 뒤) 여기 글씨를 꾹 눌렀잖아. 이거 파란색 전에 봤지? 기억나지?
아빠: 모르겠어.
나: 이거 한 지 2주도 안 됐는데.. 그래. 여기 범위 지정하면 색깔 차이 나는 거 보여? 지금 여기가 선택이 된 거야.
아빠: 복사를 누르면 이런 모양이 나와?
나: 글을 꾹 누르면 이 파란 게 나오고 아빠가 복사하고 싶은 부분까지 지정하는 거야. 그리고 복사를 누르고 글을 쓸 수 있는 메모장이나 카톡에 붙여 넣기를 해야 돼. 갤러리는 안돼. 거기는 사진만이야.
아빠: 그때 바로 넣어야 되나 보네.
나: 응, 복사만 눌러서는 볼 수가 없어.
아빠: 텍스트 복사라고 하던데.
나: 지금 한 게 텍스트 복사야. 텍스트는 문자라는 말이야. 카톡이나 주고받는 문자가 아니라 가나다라 ABCD 글씨 문자 말하는 거야.
아빠: 음.. 글씨 문자? 그리고 클립보드가 이거?
나: 클립보드는 아빠가 나한테 화면을 안 보여줘서 뭔지 모르겠어.
아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여기다가 뭐라고 쓰긴 써놨는데..
<아빠에게 쓰는 편지>
언니와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동시에 가끔 아빠는 희한한 논리를 펼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좀 힘들어. 벽에 얘기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 때도 있거든. 엄마와 아빠는 40년을 넘게 살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아빠가 말을 조금만 더 예쁘게 하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쉽지 않겠지, 아빠도. 암튼 둘이 헤어질 거 아니면 조만간 화해하길 바라.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