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은 존재하는가.
공익은 존재하는가 — 현실주의적 엘리트주의자의 정치철학적 사유
나는 정치를 단순한 여론전이나 감정 게임이 아닌,
국가를 어떻게 설계하고 지속가능한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의 중심에 항상 ‘공익이란 무엇인가?’,
‘정의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엘리트는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 물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현실주의적 인식, 제도적 감수성, 그리고 철학적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나의 입장을 서술한다.
1. 엘리트주의의 인정과 그 조건
나는 엘리트주의자다.
그러나 그것은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엘리트주의가 아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가진 절제된 책임형 엘리트주의자다: 엘리트는 단지 능력 있는 자가 아니다.
그는 전체를 조망하고, 권력을 견제하며, 권력 밖의 침묵까지 감지하고 책임지는 자여야 한다.
엘리트는 공익을 규정하는 자가 아니라,
공익이 형성될 수 있는 제도와 과정, 구조를 설계하고 보장하는 자다.
2. 공익 실체설의 거부와 과정 중심 인식
나는 공익 실체설을 거부한다.
공익은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를 보편적으로 정당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집단, 제도, 권력이 충돌하고 교섭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합의’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공익은 마치 실체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본다:
나는 공익을 실체로 보지 않지만,
공익이 실체처럼 작동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따라서 나는 그 실체를 어떻게 정당하게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것이 나의 구조 설계형 공익관이다.
3. 공리주의의 거부와 롤스적 정의론의 수용
공리주의는 소수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정의로운 체제의 기반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롤스의 정의론을 수용한다.
그의 무지의 베일, 차등의 원칙, 기회균등 원칙은
정의의 형성과 정당성을 절차적으로 확보하려는 시도였고,
그는 정의라는 공익을 실체적으로 규정하려 한 철학자였다.
하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경계한다
롤스는 정의를 실체화했지만, 나는 그 결과마저 절대화하진 않겠다. 정의는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율되고, 다시 실현되어야 하는 목표다.
4. 다원주의의 수용과 그 한계에 대한 인식
나는 달의 다원주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그 안에서 균형 있는 권력 분산과 경쟁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라는 시각은
현실 정치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 유효하다.
하지만 나는 다원주의가 자칫
형평에 대한 집착으로 결과적 평등을 강제하게 되고,
그 결과 자원 재분배의 강제라는 공산주의적 유혹으로 흐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다원주의적 절차를 설계하되,
그 결과는 반드시 정치적 책임과 철학적 기준 하에 재조율되어야 한다고 본다.
5. 비리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
나는 정치에서 비리는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권력은 인간의 이익과 연결되고,
이익은 언제나 왜곡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나는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언설을 선동적 허위로 본다.
그 대신 나는 정치인이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비리를 0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그 발생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제어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제도와 절차를 설계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지하는 정직한 정치인의 윤리다.
6. 무의사결정의 감지와 정치적 침묵의 해석
나는 무의사결정론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치는 단지 ‘결정된 것’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정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
‘논의조차 올라오지 않게 만드는 침묵의 권력’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 침묵을 감지하고,
무의사결정이 만들어내는 억압을 설계적으로 파악하고 싶다.
동시에 나는 무의사결정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것은 때로 사회적 파열을 막기 위한 지혜이자 질서 유지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 양면적 인식을 바탕으로 나는
‘침묵의 권력’과 ‘침묵의 정치’까지 다룰 수 있는 설계자가 되고자 한다.
7. 이상적 엘리트의 부재와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
나는 내가 꿈꾸는 엘리트란
권력을 견제하고,
공익을 독점하지 않으며,
침묵과 배제를 감지하고 설계하는 자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런 엘리트는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생각 자체가 너무 이상주의적인 것은 아닐까?
나는 내가 세운 기준에조차
스스로 완벽히 부합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준을 버릴 수 없다고 고백한다.
나는 내가 바라는 엘리트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 기준 없이는
아무것도 설계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나는 그 불완전한 진심으로,
내 철학을 시작한다.
이것은 이상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이상을 붙잡고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 절제의 윤리다.
결론
나는 공익이 고정된 실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공익이
실체처럼 작동하지 않으면 현실 정치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나는 그 ‘작동 가능한 공익’을
가장 정당하게, 가장 절차적으로, 가장 구조적으로 설계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나는 정의가 실현 가능한 절차 속에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정의는 언제나 열려 있고,
다시 쓰여야 하며,
다시 검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권력이 말하지 않는 공간,
말해지지 않는 권력,
의제가 되지 못하는 사회적 침묵을 감지하려고 한다.
나는 내가 정의로운 엘리트라고 단정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정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그 설계를 오늘도 고민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