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는 스며들고, 나는 웅크린다
꽃샘추위로 바람이 분다.
누군가는 그 바람을 ‘서늘하다’고 말하지만,
내게 그것은 한기에 더 가깝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바람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공허한 냉기.
그것은 내 안에서 시작되어,
나조차도 모르게 번지고 스며들어
심장까지 도달한다.
심장이 얼어붙는다는 말.
말 그대로였다.
서서히,
그리고 명확하게.
내 온기를 갉아먹고,
나는 점점 웅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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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나는 영화 조커를 보았다.
조용히 무너져가는 한 사람을 지켜보며,
나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아주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 닮아 있었다.
세상이 너무 차가울 때,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그 과정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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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할 곳이 없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에게 세상은
꿈을 좇는 무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냉장고 같았다.
차가움을 피하다가,
결국 차가움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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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는 문득 냉장고 문을 연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지만,
어쩌면 그 안의 냉기가 더 편했을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이며,
감정을 묻지 않는 냉기.
몸을 감싸지만, 파고들지는 않는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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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초적인 공간 안에서,
태아의 자세로 웅크린 채 냉장고에 안긴 그는
어쩌면 엄마에게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을 그 속에서 찾고 있었을까.
아니면,
세상과 단절되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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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상상한다.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었더라면,
아니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었다면—
세상은 조금 덜 추웠을까.
조금은 숨 쉴 수 있었을까.
조커도,
그렇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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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상상조차
한기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나는 웅크린 채로
추위를 견딘다.
차가운 바람이
또 한 번 불어온다.
조용하고, 허망하게.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