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차가운 세상, 따뜻한 냉기

한기는 스며들고, 나는 웅크린다

by 서도운 Mar 28. 2025
아래로

꽃샘추위로 바람이 분다.

누군가는 그 바람을 ‘서늘하다’고 말하지만,

내게 그것은 한기에 더 가깝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바람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공허한 냉기.


그것은 내 안에서 시작되어,

나조차도 모르게 번지고 스며들어

심장까지 도달한다.


심장이 얼어붙는다는 말.

말 그대로였다.

서서히,

그리고 명확하게.


내 온기를 갉아먹고,

나는 점점 웅크리게 된다.



---


그 밤, 나는 영화 조커를 보았다.


조용히 무너져가는 한 사람을 지켜보며,

나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아주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 닮아 있었다.


세상이 너무 차가울 때,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그 과정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


그는 피할 곳이 없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에게 세상은

꿈을 좇는 무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냉장고 같았다.


차가움을 피하다가,

결국 차가움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아이러니.


---


조커는 문득 냉장고 문을 연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지만,

어쩌면 그 안의 냉기가 더 편했을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이며,

감정을 묻지 않는 냉기.


몸을 감싸지만, 파고들지는 않는 온도.


---


그 원초적인 공간 안에서,

태아의 자세로 웅크린 채 냉장고에 안긴 그는

어쩌면 엄마에게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을 그 속에서 찾고 있었을까.


아니면,

세상과 단절되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


나는 가끔 상상한다.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었더라면,

아니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었다면—


세상은 조금 덜 추웠을까.

조금은 숨 쉴 수 있었을까.


조커도,

그렇지 않았을까.



---


하지만 그런 상상조차

한기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나는 웅크린 채로

추위를 견딘다.


차가운 바람이

또 한 번 불어온다.


조용하고, 허망하게.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작가의 이전글 달을 향한 첫 배를 띄우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