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장치가 상징하는 것(1)
『미드소마』는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 ‘호르가’를 무대로 삼는다. 이 선택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정서를 이끄는 핵심적 장치다. 그 배경이 스웨덴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다층적 맥락 위에 놓여 있다.
1. 900년 넘게 외침 없는 왕조 유지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드물게 오랜 기간 외세 침략 없이 왕조 체제를 유지한 나라다. 이 긴 고요는 ‘보존된 전통’과 ‘고립된 문화’를 가능케 했다. 호르가 공동체는 그런 침범당하지 않은 시간을 상징하며, 바로 그 고립성과 단절성 덕분에 낡은 의식과 제사가 그대로 살아 있다.
2. 공동체 육아와 성평등 중심 사회
스웨덴은 공동육아, 복지, 성평등이 가장 진보된 나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미드소마』 속 호르가는 바로 이 평등주의를 극단화한 모델처럼 보인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자식, 사랑은 공동의 것, 죽음도 공동의 몫이라는 설정은 실제 북유럽 이상주의를 변형하여 개인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를 만든다.
3. 백야 현상이 일어나는 땅
북유럽의 여름, 태양은 밤에도 지지 않는다. 『미드소마』는 전 장면이 낮에만 진행되며, 어둠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끝나지 않는 낮은 ‘진실이 감춰지지 않는 세계’이자, 동시에 숨을 수 없는 세계를 만든다.
이는 영화가 전통적인 공포의 방식(어둠, 은폐, 그림자)을 완전히 전복하고, 빛 자체를 공포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유다.
4. 무표정한 민족, 신비로움의 이미지
일반적으로 스웨덴인은 감정 표현에 있어 절제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미드소마』 속 인물들은 웃음도, 울음도 모두 '함께' 흉내 내고 따라 할 뿐이다. 이는 감정의 진정성보다 공동체의 동기화가 우선인 세계, 그리고 정서마저 제의화된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 무표정함은 종교적 신비로 위장된 공허함의 상징이다.
5. 이상과 불안을 동시에 담은 이미지
스웨덴은 전통과 자연, 복지와 공동체, 평등과 관용을 모두 갖춘 ‘이상 사회’의 이미지로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영화는 이 낙원적 이미지를 그대로 빌려, 그 안에 내재한 불안과 폭력성을 끌어낸다.
아름답게 포장된 공동체, 정돈된 전통, 밝은 자연. 『미드소마』는 그 모든 것이 비인간적 의례와 광기의 외피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미드소마』의 시간적 배경은 5월, 여름이 막 시작되려는 시점이다. 그러나 이 시점은 단순한 계절적 배경이 아니다. 영화에서의 5월은 의식이 열리고, 삶의 한 단계를 넘어서기 직전의 상징적 시간이다.
1. 호르가인들의 여름 순례, 그 직전의 시기
호르가 공동체는 구성원이 18세가 되면 ‘여름 순례’라는 이름으로 마을을 떠나 외부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이는 공동체 내부의 폐쇄적 삶에서 벗어나 세속을 목격하는 일종의 성인식이다.
5월은 바로 그 순례가 시작되기 직전의 시점으로, 경계적 존재들이 내부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이 시기에 열린 의식은, 순례가 아닌 내부에 남는 이들을 위한 ‘성숙의 의례’인 셈이다.
2. ‘18세’에 대응하는 생애의 계절
영화는 인생을 0~72세, 18년 주기로 네 구간으로 나눈다. 그 첫 세 구간이 각각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로 이어진다면, 5월은 바로 18세에 해당하는 전환의 계절이다.
즉, 꽃이 피고, 감각이 예민해지고, 선택의 책임이 시작되는 시기. 대니가 마주한 감정의 흔들림 역시, 이 시간의 상징성과 겹쳐진다.
3. 따뜻함과 생동, 그리고 메이퀸
5월은 가장 따뜻하고 생동감 있는 계절이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5월의 여왕’, 즉 메이퀸이다.
대니가 메이퀸으로 선택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계절 자체가 그녀의 탄생을 예정한 시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슬픔과 고립의 시간을 지나, 그녀는 5월이라는 계절에 의해 ‘선택된 자’, ‘의식의 중심’이 된다.
『미드소마』에서 호르가 공동체는 인간의 삶을 18년씩 네 단계로 나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성장, 생식, 노동, 전수.
그리고 마지막은, 퇴장.
이 구조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선형이 아니라 순환이고,
삶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리듬이다.
1. 자연과 같은 시간, 인간도 네 계절
호르가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자연처럼 바라본다.
0세에서 18세까지는 봄. 배우고 자라나는 시간.
18세에서 36세까지는 여름. 감각과 사랑, 순례의 시기.
36세에서 54세는 가을. 노동과 책임, 생명을 이어주는 시기.
54세에서 72세는 겨울. 지혜를 전수하고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하는 시간.
인생은 자라나고, 피어나고, 결실을 맺고, 스러진다.
마치 하나의 식물처럼.
2. 18이라는 수가 가진 구조
왜 하필 18일까?
그 숫자는 인간이 사회적으로 ‘성인’으로 전환되는 경계다.
가장 뚜렷한 성장의 임계점이며,
삶의 각 시기를 질서 있게 구획하기에 적당한 리듬이다.
9의 배수이자, 완성과 재생을 상징하는 수.
18은 생명력의 정점이자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18 x 4 = 72.
하나의 인생이 네 시기를 지나 완결되는 구조.
이들은 삶을 선형의 목표로 보지 않는다.
삶은 결국 공동체가 이어갈 생명력의 주기,
즉 기능의 순환과 소진이다.
3. 시간을 분배하는 공동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간을 '소유'하려 한다.
그들은 시간을 '분배'한다.
각자의 시간이 아니라, 공동의 시간 안에서 허용된 역할만이 존재한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그 흐름이 끝나는 순간, 공동체는 말한다.
『미드소마』는 철저히 숫자의 구조 위에 세워진 세계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9’라는 숫자다.
이 세계는 9일의 제의, 9명의 희생, 90년의 주기 속에서 숨 쉬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그들에게 숫자는 단순한 수학이 아니다.
숫자는 우주의 질서이고, 공동체의 언어며, 신화의 리듬이다.
1. 9일 – 끝나지 않는 낮의 의식
호르가의 제의는 딱 9일간 지속된다.
그 안에서 춤이 벌어지고, 죽음이 발생하며, 여왕이 탄생하고, 불이 오른다.
이 9일은 단순한 행사 일정이 아니다.
9는 모든 수가 자신으로 돌아오는 완결된 숫자다.
9 × 2 = 18 → 1 + 8 = 9
9 × 3 = 27 → 2 + 7 = 9
아무리 곱하고 나누어도,
9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이 반복의 리듬은 곧 시간의 고리,
의례가 다시 제자리로 세계를 되돌려 놓는 정화의 순환이다.
2. 9명의 제물 – 세계를 바꾸는 균형의 희생
제의의 마지막, 총 9명의 희생이 불 속에 사라진다.
그중 일부는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일부는 외부인으로 끌려오며,
나머지는 여왕의 선택을 통해 제물로 바쳐진다.
이 9명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그들은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수학적 희생이다.
4명의 외부인
4명의 내부자
그리고 마지막 1명은 메이퀸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균형의 제물.
9개의 죽음으로 1개의 세계가 재정비된다.
숫자는 피보다 냉정하고, 믿음보다 정확하다.
3. 90년 – 반복되지만 기억되지 않는 신화의 주기
이 모든 제의는 90년에 한 번 열린다.
한 세대도 아닌, 두 세대 반에 해당하는 시간.
즉, 이 의식을 직접 기억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90 = 9 x 10
숫자 9의 신성함과
숫자 10의 완전성이 결합된 수.
이는 곧 절대의 리듬,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신화적 단위다.
90년은 시간이 아니라, 의미의 간격이다.
망각 속에 반복되는 질서,
기억 없이도 계승되는 믿음.
결국, 숫자는 이 세계의 신이다
9일간의 낮,
9개의 시신,
90년 뒤에 다시 올 또 다른 시작.
이 세계는 문자가 아니라 숫자로 기록된 신화다.
숫자는 말이 없지만,
모든 진리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숫자의 끝에 선 것은,
다름 아닌 한 사람의 미소다.
다음 즉 마지막화에선 루빈과 루비라드르의 의미와 모순 그리고 아리애스터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알려드립니다.
표지: <미드소마> 공식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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