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운의 시네마틱 레버리 [미드소마(4)]

죽음의 그림자

by 서도운

5장. 죽음의 그림자


죽은 자의 유해가 바람에 실려 퍼진다. 그들은 그 재를 죽어서 쓰러진 나무 아래에 뿌린다. 전날 절벽 아래로 떨어진 두 노인의 일부는 이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그들은 말한다.


죽음은 순환이고, 한 존재의 끝은 곧 다음 존재의 시작이라고. 그리하여 이름이 물려지고, 새로운 아이는 다시 그 이름을 산다고.


그런데, 왜 그토록 정성스럽게 죽은 나무 아래에 그 죽음을 모시는가.


그토록 죽음을 순환의 일부로 본다면서, 왜 그토록 애써 그 흔적을 지키는가. 잊어야 할 것이면 왜 모시고, 다시 태어날 존재를 기다린다면서 왜 애도하는가.


애초에 호르가 문화는 관심 없던 마크는 그 나무에 소변을 봤다. 그는 재가 뿌려진 나무 앞에서도 재미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내렸다. 그제야 호르가 사람 중 하나가 처음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분노였다. 이질감 없이 유지되던 그들의 무표정 위에, 불쾌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순환의 일부라고 말했던 그 죽음이, 왜 분노의 이유가 되는가. 죽음은 자연이라며, 왜 조상의 유해는 신성시되는가. 그 이중적 감정 앞에서, 마을의 ‘해석’은 고요하게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코니와 사이먼은 떠날 준비를 마쳤다. 말없이, 조용히 짐을 꾸렸고 그들의 눈빛에는 여운도, 감상도 없었다. 하지만 사이먼은 보이지 않았다. 코니가 묻자, 한 호르가인이 말했다. “사이먼은 먼저 갔어요.” 그 말에는 누가 들어도 이상하지만 어쩌면 그럴듯하게도 들릴 수 있는 변명들이 있었다. 이미 떠났다는 전제만을 남긴 채, 사이먼은 ‘이야기’에서 삭제되었다.


그 말을 대니는 곧바로 크리스티안에게 전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묻어났고, 손끝엔 떨림이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늘 그랬듯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먼 나쁜자식이네." 등 형식적으로 대니에게 공감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말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근친도 하나요?”


그는 공감이 아닌 논문에만 관심을 가졌다. 슬픔을 흘려보내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불안을 어루만지기보다 그는 체계를 파악하려 했다.


마야라는 소녀가 성인식을 치렀다는 말, 혼인은 외부인과 맺는다는 전통, 근친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유전자가 필요하다는 논리. 뭔가 이상해보이는 이러한 풍습들은 그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연구의 일부였다.


대니는 혼자였지만, 여인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었고, 꽃을 엮으며 조용히 웃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그녀는 누군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너무 잔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속에서 잠시 숨을 쉬었다.


그러던 중, 그들이 조시에게 루비 라드르라는 이 마을에서 가장 신성한 경전을 설명해 준다. 루빈이라는 예언자에 의해 쓰인다는 그 책은 사실 무작위로 휘갈긴 낙서에 가까웠다.


루빈은 말을 할 수 없고, 자신의 손을 온전하게 쓸 수도 없다. 그는 근친혼의 결과로 태어난 존재였다. 하지만 그 낙서는, 장로들의 입을 거치면 하나의 ‘진리’가 되었다.


의미는 쓰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자에 의해 부여된다는 역설. 진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고 말하는 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위선. 그 위에 이 마을의 질서가 세워져 있었다.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다. 짧고 얇은, 그러나 분명한 울음소리. 아마 코니의 비명소리로 들린다. 마을을 부정하는 그 둘은 그렇게 사라졌다.


저녁식사가 시작되었고 마크는 여전히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나무도, 비명도, 코니도. 그의 시선은 오로지 여자들의 시선에만 머물렀다. 그리고 마침내, 한 여인이 그의 손을 이끌었다. 그는 따라갔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크리스티안은 여전히 논문생각 중이었다. 그의 접시 위에는 남들보다 더 핏빛인 음료 그리고 누군가의 체모가 들어간 파이가 놓였다. 그것은 마야가 그에게 바친 것이었고, 이전날 본 주술의 그림과 정확히 일치했다. 사랑의 룬. 피와 체모로 만든 정념의 징표.


그는 입에 거슬리는 마야의 체모를 발견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며 마야의 혈흔이 들어간 음료를 마셨다. 그렇게 크리스티안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로 마야의 사랑의 주문에 빠지게 된다.


그날밤 조시. 그는 결국 참지 못했다. 루비 라드르를 훔쳐보다가 누군가에게 가격 당했다. 그를 내리친 자는— 마크의 얼굴가죽을 쓰고 있었다. 그저 성적인 욕망만 쫓던 마크는 가죽만 남기게 되었다.


처음 날, 마을의 사람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추던 춤. 그 의식의 이름은 '광대가죽 벗기기' 그 노래가 이제 농담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날, 코니와 사이먼, 조시는 사라졌고, 마크는 가죽이 벗겨지고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6장. 이름을 지운 자, 얼굴을 남긴 자


루비 라드르가 사라졌다. 그 신성한 책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이제 아무도 웃지 않는다는 걸 의미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웃으며 피리를 불던 사람들, 꽃으로 죽음을 감쌌던 사람들, 감정을 흉내 내며 울던 사람들.


이제 그들은 묻기 시작한다.

“조시는 어디 있나요?” “마크는요?”

호르가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이 돌아오지 않을 걸.

이 질문은 확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이러한 진실을 아는지 떠보는 행동일 뿐이었다.


크리스티안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걔네들이랑 일행인 게 부끄럽네요.” 그는 조시와 마크를 지우고 있었다. 그의 논문엔 진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관계가 아니라, 자료를 원했다.


호르가인이 그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마야에 대해 물었다.


“그 소녀가 마음이 있다네요. 당신에게.”


그의 머릿속엔 어제 먹었던 파이와, 컵에 묻어 있던 붉은 흔적이 겹쳐 떠올랐다. 말할 순 없지만, 이미 알고 있는 진실.


“마야는 이제 어른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를 원해요.”


그는 대답했다.

"파이에 마야의 체모가 들어 있었어요."


그 대답이 끝나자,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그들 안에 들어가 있었다.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의 몸은 공동체의 일부가 되었다.


그 시각, 대니는 여인들과 함께 작고 노란 차를 마셨다. 이름도 없는 그 음료는, 경계심을 허물고, 마음을 열게 하며, 몸의 기억을 끌어올리는 마법이었다.


모두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손을 잡고, 바람에 흔들리며 그녀는 웃었다. 처음으로, 정말로 웃었다. 그녀는 그들에게서 가족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춤은 오랫동안 계속됐고, 사람들은 하나 둘 쓰러졌다. 끝까지 남은 건, 대니였다. 모두가 외쳤다.

“메이퀸!”


그녀의 머리 위에는 꽃이 올랐고, 그녀의 어깨에는 가족이 올랐다. 그녀는 이제 ‘선택된 여왕’이 되었고, 외부인이 아닌 그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가 공동체의 옷을 입자, 크리스티안은 이 마을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그저 혼자 서 있었다. 주변은 웃고 있었고, 그녀는 환호받았으며, 그의 자리는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더 이상 대니의 곁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는 본능을 좇았다. 마야를 따라 방으로 향했고, 그곳엔 향이 피워졌고, 노란 가루가 코끝을 스쳤고, 그녀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엔 나체의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크리스티안은 마야와 관계를 시작하자 여인들은 그들과 함께했고, 그들 모두가 함께 움직였다. 감정도, 리듬도, 숨소리도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흔들렸다.


이곳엔 개인이 없었다. 그는, 그들의 의식 안으로 흡수되었다.


그 순간, 문틈으로 대니가 그 장면을 보았다.


그녀는 무너졌다. 비명이 나오지 않았고, 눈물도 넘치지 않았다. 그저 떨렸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호르가의 여자들이 다가왔다. 그녀는 울었고, 그들은 함께 울었다. 그녀의 감정이 공동체의 감정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대니는 이 공동체의 일부였고, 크리스티안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표지: <미드소마> 공식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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