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것은 누구인가
그날, 크리스티안은 불탔다. 곰가죽을 뒤집어쓴 채, 공동체의 가장자리에서— 혹은 그 중심에서.
대니는 웃었다.
그녀는 마침내 혼자가 아니었고, 사랑받았고,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조건이었다.
그 웃음은 선택의 결과였다.
우리는 묻는다.
진짜 불타는 것은 누구였을까.
의식을 위해 태워진 남자였을까,
아니면, 그를 태우는 대가로
감정을 나눠 가진 자신을 택한 여인이었을까.
대니는 맨 처음부터 혼자였다.
가족을 잃고, 연인에게 무시당하고,
감정을 이해받지 못한 채
고통을 감추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녀는 무너졌고, 흩어졌고,
결국 그 파편 위로 공동체가 다가왔다.
그들은 울었고, 그녀도 울었다.
그들은 웃었고, 그녀도 웃었다.
감정이 공유된다는 것,
고통이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대니에게 구원이자 독이었다.
현실은 잔혹했다.
하지만 호르가는 진실하지 않았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대니는
진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거짓을 받아들였다.
노란 차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몸의 본능을 드러내고,
경계를 허물고,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무너뜨렸다.
그리하여,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태워야
사랑받을 수 있는 구조,
그 안에서
대니는 살아남았다.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 웃었고,
사랑하지 않기 위해 그를 불태웠다.
이것은 공포영화가 아니다.
『미드소마』는
사랑에 대한 영화다.
단, 그 사랑은
조건부이고, 폭력적이며,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감정의 거래다.
다음 화부터는 왜 하필 스웨덴인가? 숫자 9의 의미는 어떤 것 인가등 영화적 장치들의 해석을 다루겠습니다!
표지: <미드소마> 공식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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