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계절, 말해지지 않는 감정들
차가운 허밍이 화면을 덮는다.
눈으로 덮인 풍경, 새하얀 겨울.
그 계절은 이미 무너진 어떤 마음의 표면처럼, 고요하고도 불길하다.
전화벨 소리.
대니는 동생의 안부를 걱정하며, 부모의 반응을 기다린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다.
고통은 연락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랑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녀의 연인은 공감이 아닌, 인내를 연기하는 사람이다.
그는 문제를 그녀의 감정 탓으로 돌리고, 말로만 사랑한다.
그녀의 불안은 관계를 갉아먹고 있지만, 떠나고 싶지도 떠나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녀에겐 사랑이 아니라, 기댈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과 친구들은 서로를 소비하는 남성적 대화에 몰두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존재가 아닌, 하나의 곤란함이다.
여자친구는 동정의 대상이자, 여행 계획의 걸림돌이며,
연인이 아니라 떠나지 못한 타자로 존재한다.
그녀의 가족은 죽었다.
동생은 부모를 독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대니는 그 모든 죽음을 확인한 뒤,
자신의 감정이 꺼진 것처럼 살아간다.
삶은 이어진다.
하지만 감정은 뒤따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멍하고, 모든 말은 어긋나며,
그녀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이라는 틀에 맞춰 움직이지 못한다.
그녀는 이별을 말하지 못한 관계 속에 묶인다.
크리스티안은 떠나려 했지만, 그녀의 비극은 그를 '남아 있어야 하는 남자'로 만든다.
그는 책임을 감정으로 착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대니는 귀찮은 존재이다. 그녀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고 오히려 같이 있기를 피하는 느낌이다.
스웨덴 여행도 대니를 피해 자유롭게 다녀오고 싶은 그의 욕망을 내비치지만 결국 대니에게 들키고 그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말한다.
“같이 가자.”
스웨덴 여행을 추진한 펠레는 이상하게 따뜻하다.
그는 처음으로 대니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듯하다.
그녀가 모두를 잃었다고 말할 때,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얻었잖아요.”
그 순간, 그녀는 울음을 터뜨린다.
너무 오랫동안 묻어둔 감정이,
누군가의 인정 하나에 허물어지고 만다.
비행기는 떠났고, 풍경은 바뀌었다.
하지만 사람은 그대로다.
대니가 곁에 있음에도 조시와 마크는 여성에 대한 성적 농담을 서슴지 않는다.
그녀는 이 무리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은 푸르지 않고, 기이하게 하얗다.
산뜻한 들판은 아름답지만, 너무 넓고 낯설다.
그 풍경은 마치 꿈처럼 유연한 동시에, 어딘가 불편하게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그 속엔 수많은 벌레들—한 조각의 현실이 끼어든다.
그녀는 미드소마에 ‘도착’ 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저 떠밀려왔다.
버섯차라는 통과의례를 앞에 두고, 그녀는 모든 이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의 첫 선택은 강요가 아닌 설득이고,
그녀는 조용히 잔을 든다.
약기운은 빠르게 퍼진다.
마크는 과하게 감각에 반응하고,
조시는 기록을 남기는 데에만 집중하며,
크리스티안은 여전히 애매하다.
오직 대니만이 조용히 풍경을 바라본다—마치 자연과 혼자가 되려는 사람처럼.
그러나 그 속에서도 상실은 계속 깨어난다.
‘가족’이라는 단어 하나에, 대니는 숨을 멈춘다.
그 순간, 그녀 앞에선 누군가가 노래하고, 누군가는 웃는다.
그 소리는 감정의 연대가 아니라, 비웃음처럼 들려온다.
그녀는 여전히 혼자다.
거울 뒤,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
그 장면은 상징적이다.
대니는 꿈에서 깨어나지만, 이미 하루는 지나가 있다.
그녀에게 시간은 더 이상 감각되지 않는다—
그녀는 삶이 아닌 통과 의례로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피리 소리는 상승하고, 숲 속 새소리는 기묘하다.
이 마을은 자연과 하나 된 듯 보인다.
그러나 일행 중 누구도 자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숲을 무서워하고,
벌레나 동식물 같은 자연의 일부를 '죽음의 징조'처럼 인식한다.
자연은 그들에게 풍경이 아니라 위협이다.
대니조차 그 속에서 아직 감정의 해방을 찾지 못한다.
결국, 모두가 자연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 자연 안에 놓인 마을은 오히려 가장 이질적인 구조물이다.
하얀 옷, 규칙, 노래, 시선—
여기는 자연이 아닌,
감정을 감시하는 새로운 질서의 시작점이다.
표지: <미드소마> 공식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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