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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콤플렉스설

by LISA

콤플렉스는 인간을 지배하는 강력한 요소 중 하나다. 콤플렉스가 무서운 것은 평소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고 잠잠하다가도 갈등이나 고난이 닥쳤을 때 폭발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콤플렉스를 깊이 있게 고민해보는 과정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관계를 맺다보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콤플렉스를 유추해보게 되곤 하는데 결코 약점을 잡거나 괴롭히려는(?) 목적은 아니고, 그만큼 그 사람이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또 인간적으로 순수한 호기심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콤플렉스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다양하겠지만 40년 가까이 관찰해본 결과 어느 정도 크게 카테고리화가 가능하다. 집안, 학벌, 외모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건 절대평가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상대평가라서, 학벌을 예로 들어보자면 제 아무리 서울대를 졸업했어도 하버드대를 못간 데 한이 맺혔으면 그건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본인이 고졸이라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면 콤플렉스가 되지 않는다. 가끔은 만나는 사람을 통해 해소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엄마는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다는데 키 큰 아빠와 만나서 일시에(?) 그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콤플렉스는 평소에는 잘 알 수가 없다. 이 사람을 좀 안다고 생각해도, 어쩌면 꽤 오래 교류해도 모를 수 있다. 과거 인연 중에 객관적으로 외모는 못난 편이지만 다양한 재주와 지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본인이 스스로 못생겼다는 점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하기도 했고, 워낙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던 친구라 외모가 그의 콤플렉스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나와 헤어진 뒤 당시 남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코 성형을 한 것을 보고 콤플렉스였구나 깨달았다. 정작 이별의 원인은 전혀 외모가 아니었음에도.


또 다른 인연은 가족부터 일가 친척까지 후덜덜한 학벌과 스펙을 자랑하는 집안에서 혼자 고졸이었다. 그런데도 집안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홀로 아르바이트로 사업자금을 모아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꽤 반열에 올린 점이 멋있어 보였다. 본인도 딱히 공부에 필요를 못 느껴서 대학을 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내게 퍼붓는 레퍼토리가 있었는데, 바로 "좋은 대학 나오면 뭐하냐. 아는 게 없는데"였다. 꽤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부모와 형제가 나를 식사에 초대했는데,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네 덕분에 공부를 통 안하던 애가 다시 대학에 가보겠다고 한다, 너무 고맙다"고 했다. 만만치 않은 성격에 펄쩍 뛸 줄 알았던 그는 부모 형제의 강력한 이구동성 앞에서 웬일인지 순한 양처럼 조용했다. 콤플렉스란 그런 것이다.


콤플렉스는 아무래도 가정환경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빠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내 본적이기도 한, 성리학의 본고장 경주 양동마을에서 자란 아빠는 심지어 군인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꽤 엄혹한 어린시절을 보낸듯 하다. 어린 아이를 감염병에 걸린 할아버지와 한 공간에서 자며 수발들게 했다는 일화를 들려줄 때부터 아버지한테 언제 어디서 뭐로 맞았는지를 일흔이 되도록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해와도, 100m 달리기에서 12초를 뛰어도 칭찬 한 번 들은 적이 없다는 아빠는 그렇게 성격이 꼬여왔나 보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나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해서도 수없이 탐구해봤다. 사실 스스로 별로 모자람이 없고, 성격도 이 정도면 원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콤플렉스가 없는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고 분명히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고 어렴풋이 느끼면서 실체에 접근 중인 단계다. 중간 결론은 특별하지 못하고 평범한 데 대한 자격지심과, 애정결핍 두 가지 정도인 것 같은데 이게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직 파악을 못했다. 이것 역시 유년 시절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애정결핍은 혹시 어릴 때 부모님과 같이 한 시간이 짧아서인가 싶고, 평범함에 대한 자괴감은 워낙 욕심이 많은 성격 때문인가 싶다. 곧 불혹인데, 지천명쯤이 되면 정확하게 들여다보게 되려나, 반쯤은 무섭기도 반쯤은 기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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