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게 차려진 한 그릇 밥상과 식후 디저트를 즐긴다. 혼자도 좋고 친애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 좋다. 그 즐거움이 지속한다는 것은 잘 살아있다는 증거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치면 당장 입맛부터 떨어진다. 한 알만 먹으면 식사를 하지 않아도 영양소가 어느 정도 충전되는 알약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두 번째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꽤 힘들었는지 입맛이 통 없은 지 좀 됐다. 취재원과 만나면 할 수 없이 식사를 했지만 기본적으로 밥을 먹는 행위가 귀찮아졌다. 그나마 커피나 허브티, 그리고 케이크 같은 약간의 디저트를 맛보는 것은 낫다. 하지만 그나마도 카페인에 제약이 있으니 어렵다.
임신은 입맛도 바꿔놓곤 하는데, 첫째 때는 평생 마시지도 않던 커피를 한두잔씩 먹게 됐고 이번에는 희한하게도 잘만 먹던 고기류가 통 싫어졌다. 특히 잘 구운 안심을 한 번씩 잘 먹곤 했는데 최근에는 쇠고기 냄새만 맡아도 역하다. 내 소울푸드 중 하나였던 '냉삼'이나 떡볶이도 별로 생각나지 않고, 그나마 닭고기는 조금 낫다. 그래도 좀 생각나는 건 싱싱한 채소와 두부 정도인데 최근 먹고 있는 약은 희한하게도 녹황색 채소와 콩류를 자제하라고 한다. 시원한 과일즙이나 산후 붓기를 빼는 데 좋은 호박즙 같은 엑기스도 금지 품목이다. 못 먹게 하면 더 먹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인 건지, 요즘 유일하게 생각나는 건 쌈밥이다. 여러 색의 싱싱한 쌈채소에 보리밥도 넣고 시골 된장도 넣어서 싼 뒤에 입에 넣다보면 한 그릇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입맛이 없으면 다이어트가 (조금) 되는 이점은 있다. 하지만 건강한 방식이 아니므로 이 상태가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화부에 근무할 때, 늘씬하기로 유명한 한 걸그룹 멤버와 인터뷰한 적이 있다. (힌트: 꽃사슴) 깡마른 여자 연예인들은 힘이 없어보이는 경우도 많은데, 실물로 접한 그는 매우 건강해보였다.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워낙 먹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인원이 꽤 많은 그룹이었는데, 혼자 유일하게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서 종이컵 분량으로 식이 제한을 하곤 했던 다른 멤버들의 원성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식욕만큼이나 숙면도 중요한 생존 신호 중 하나다. 워낙 잠자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수면의 질도 낮다. 임신 때는 어느 쪽으로 누워도 불편했던 배와 빈뇨 증상 때문이었고, 요새는 육아 야근 때문이다. 아기가 좀 잘 때 같이 쪽잠을 자면 되는데, 한번 잠들면 중간에 깨는 것을 힘들어 하는 편이라 그냥 야근 때 자지 않고 바통 터치 후에야 눈을 붙인다. 수면 문제는 아기가 생후 50~60일 정도가 지나면 보통 해결되던데, 역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입맛인 듯하다. 좋아하던 '고독한 미식가'의 맛찌개 형님과 성시경이 나오는 '미친 맛집'을 보고 있어도 '와, 나도 너무 먹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내가 맞나 싶다. 최근엔 꽤 오래 마셔온 산모로티와, 유명하다고 해서 들여봤지만 내 입엔 영 밍밍한 오르조 커피도 질리기 시작해서 뭐로 갈아타야 할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