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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When I Sleep

by LISA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秘密)'은 모두에게 존경받는 한 대통령이 허망하게도 평범한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경찰은 뇌 기억을 영상으로 재생하는 방식으로 수사에 나선다. 대통령은 뇌 영상에서조차 작은 일탈도 없었고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는 사람임이 증명돼 모두를 감탄하게 했다.


그러나 후반부, 그가 단 한 사람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이 확인됐다. 대상은 사랑하는 딸의 약혼자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의 측면 사진을 지갑에 넣어 몰래 보관했다. 강도가 지갑을 빼앗으려 할 때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없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죽은 이유였다. 평생을 머릿 속에서만 일탈하고, 가끔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한 사람의 뇌 기억을 훔쳐보는 게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면서 첫 에피소드는 마무리된다.


생각, 기억, 상상, 그리고 꿈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꿈에서 어떤 행위를 하든 그것은 무조건 용인된다. 이후에 드는 허탈함이나 죄책감과는 별개로. 그래서 나는 꿈꾸는 것을 좋아한다. 꿈에서는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 실패했던 것들을 리플레이해서 성공시켜 보기도 하고, 내게는 없는 능력을 발휘해 쾌감을 느껴보기도 하며,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멋진 풍경을 만나기도, 때로는 만날 수 없는 이를 반갑게 마주해보기도, 누군가에게 사회적 가면을 벗고 마음 속 이야기를 그대로 뱉어보기도 한다.


물론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꿈은, 상당 부분 평소 하는 생각과 무의식을 반영하곤 하지만 때때로 내 마음대로 꿔지지 않을 때도 있다. 싱글일 때는 신기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닌데도 희한하게 예지몽을 꾸곤 했다. 주로 나, 가끔은 친한 사람의 중요한 시험이나 취업 등의 결과를 미리 보곤 했는데 어느 새부터인가 그걸 미리 아는 게 두려워서 차라리 꿈을 안 꿨으면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그 능력(?)이 싹 사라졌다. 이 외에 지금까지 생각나는 몇 가지 악몽들도 있는데, 가끔 찾아오는 그것들을 감수하고라도 꿈의 달콤씁쓸함은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다.


심각함에서 벗어나서, 어린 시절 꿈 이야기.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 중 하나는 바로 결혼에 관한 꿈이었다. 누가 봐도 개꿈이지만, 희한하게 모든 장면이 생생했다. 중학생 때인가, 꿈에서 수업시간에 누군가 결혼식을 하러 가야 한다고 해서 어리둥절해하며 따라 나섰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알리지 하면서 꽃가마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복궁이었다. (공주병 절대 아니고, 드라마 '궁'을 방영하기도 훨씬 전이었다) 그때 신랑의 얼굴을 분명하게 봤는데, 연보랏빛 턱시도에 검을 차고 있었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매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미래의 남편을 미리 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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