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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알 수 없는 神에 관하여

by LISA

얼마 전 남편과 입씨름을 했다. 정확히는 또 말 한 번 잘못했다는 이유로 나한테 조져졌다.


최근 산후조리 중 입원한 대학병원은 가톨릭 재단이어서 1층에 제법 큰 성당이 있었다. 모태신앙이었던 데다 현재도 천주교에 적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 이유로 냉담 중인데, 나약한 인간답게 힘들 때는 또 신을 찾게 된다. 입원 중에 컨디션이 괜찮았던 이틀 정도, 밤 중에 성당을 찾아 이것저것 기도했다. 기복신앙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늘 생각하지만, 역시 인간은 급해지면 어쩔 수가 없다. 남편도 기도하는 내 뒷모습이 짠해보였던지 사진도 남겨놓았다.


국내 많은 신자들이 그럴 거라 생각하는데, 교회를 가든 성당을 가든 또 종종 역술인을 찾기도 한다. 불황이나 불확실성이 큰 시대일 수록 점집이 성행한다는 말도 있듯이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힘들 때면 언제쯤 나아지는지, 좀 괜찮을 때면 언제 조심해야 하는지를 늘 알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의 범주에서 못 벗어나는지라 이따금 역술인이나 타로마스터 등을 찾는다. 정말 힘들 때면 심지어 절 근처에 갔다가 돌탑에 돌을 올려놓기도 하고, 보름달이 뜨면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소원을 빌어보기도 한다.


나의 이러한 습성을 아는 남편은 갑자기 병상에 누워 있는 나한테 "참 많은 신을 모신다"고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말했다. 순간 열이 확 받아서 되받아친 말은, "사람이 그만큼 힘드니까 어떻게든 이겨내보려고 이것저것 해보는데 왜 남의 삶의 방식을 조롱하냐. 이떤 방식으로든 이겨내면 강한 거다"였다.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제대로 된 신앙도 아니고, 그저 나약할 뿐이라는 걸 알았다. 기복신앙을 경멸하면서도 결국 나는 힘들 때 신을 찾고, 사실 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신은 대체 어디에 있으며 인간사에 정말 개입을 하기는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유아세례는 그저 의식으로만 남아있다. 엄격했던 수녀님은 기도문과 교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집에 보내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첫 고해성사 때는 뭘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최근에 2주 정도 미사를 못봤어요'라고 했는데, 가림막 뒤의 사제가 기도문을 엄청나게 많이 외우라는 보속을 주는 바람에 너무한다면서 궁시렁대며 나왔던 기억도 있다. 철이 좀 들고 나서는 왜 여자는 사제가 될 수 없는지, 수녀들과 여자 신도들은 왜 머리에 꼭 미사보를 뒤집어 써야 하는지 등에 불만이 생겼다. 가끔 강론 시간에 정치 성향을 드러내거나 쓸데 없는 사족을 붙이는 사제들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미사에 참여하지 않게 됐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을 편안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본당 특유의 분위기는 워낙 좋아해서, 지금도 종종 길을 걷다 가까운 성당이 보이면 들어가서 주의기도나 성모송을 한두번 읊고 나온다.


또 하나의 신과 관련된 기억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넘어갈 무렵이다. 그날따라 멀어진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수업시간에, 또 쉬는 시간에 생각이 날 때마다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리고 하교 후에 볼일이 있어서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옆동네를 걷고 있었는데, 정말 그 친구와 마주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볼 일이 없는 환경이었는데 참 신기했다. 엉뚱하고 유치하지만 신이 있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물론 안 좋은 기억도 있다. 과거 교제했던 한 사람은 여러가지로 콤플렉스가 많았는데, 그걸 신앙의 힘으로 푸는 듯 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자신의 신앙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으로 전도를 했다. 심지어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비롯한 것인데,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논리에서 많이 밀렸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마지못해 한 번 따라간 교회는 하필 또 통성기도를 하는 날이었다. 각자 크게 소리 내서 기도하고 간증하는, 다소 아노미 같은 장면에 기가 질린 나는 종교 집단과 더더욱 멀어졌다.


성당 특유의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와 닮은 사찰은 좋아하는 편이다. 언젠가 갔던 템플스테이 때 발우공양과 108배, 스님과의 차담도 참 좋았다. 다만 불교 교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도 하고, 회사 바로 앞에 있는 조계사에서 총무원장 선거를 할 때마다 난타전이 벌어지는 걸 보면 역시 종교란 또 거기서 거기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든다. 심지어 유력 후보자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란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것도 봤다. 또 언젠가 우연히 찾은, 크게 유명하지도 않은 작은 절에서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내가 아는 모든 정치인들 이름으로 연등이 달려있는 걸 보고 '역시'라는 생각도 했었다.


신을 알려면 의식적으로 신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살다 보면 알기 적절한 때나 알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가 오는 걸까. 중요한 건 마음이 동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같다. 또 진정한 신앙은 고난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예전에 감명 깊게 읽은 '천국의 열쇠'를 보면, 삶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진정한 신앙이 나오고, 그 신앙에서 어둠을 돌파하는 힘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는 예술과 비슷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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