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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벌어지는 눈치게임

제발

by 향기나는남자

지하철을 타면 우린 누구나
눈치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라고 부추기는 사람은 없지만
좌석이 만석이라면


서 있는 사람은
가장 먼저 내릴 것 같은 사람 앞에 서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눈치 게임은 시작된다.


간혹 기권자도 있다.
이들은 좌석 앞이 아닌 출입구에 자리 잡는다.


'나 자리 따윈 필요 없으~'






각자 손잡이를 기준으로 1번, 2번
가상의 구역을 나누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을
유심히 지켜본다.


보고 있던 핸드폰을 가방 속에 넣거나
소지품을 정리하는 행동을 보이면
마음이 먼저 설레곤 한다.


'아 드디어 일어나겠구나'



앞에 사람이 일어나려고 할 때
주변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애써 운 좋은 자리를 차지했는데
마지막에 방심한다면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



특히 저 멀리 있던 아줌마.
경계대상 1순위다.


아줌마는 눈치가 아주 빠르다.
다리가 쑤시는 날에는
내일은 비가 내린다는 말을 하듯이


고성능 콤퓨타를 갖춘 기상청보다
눈치가 야무지게 빠르다.


아마 이런 눈치 빠른 아줌마들을
전국 기상청에 근무시킨다면
강수량을 알 수는 없어도
비가 온다. 안 온다 정도는 알 수 있다.



날씨 예보를 하는 것처럼
누군가 일어설 기미가 보이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레이다가 발동되는 것 같다.


이제 다 왔다. 숨을 죽이고
절대 미소를 보이지 말아라.


살짝이라도 미소를 보이는 순간
이곳에 변화를 예측하게 된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일어날 때
문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양쪽에 사람이 서 있고
출입구가 오른쪽이라면


왼쪽으로 45° 왼발을 내밀어라~
그럼 그놈이 일어나는 순간


그놈은 오른쪽으로 나가고
나는 의자에 궁둥이를 들이밀면 된다.



오른쪽은 그놈이 나가기 때문에 틈이 없다.
그러니 걱정 말아라!



그렇게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동안 서 있다.



오늘 내 앞에 앉은 그놈~
핸드폰을 가방 속에 넣었다 뺏다.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앞에 서 있는 나를 농락하고 있다.



그놈은 프로다 ㅋㅋㅋ
오늘 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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