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장점은 둘 다 진상이라는 것
<전편 참고>
※ 이 글은 회사의 정보 유출 문제 가능성을 고려해서, 일부(지역, 시간 등)는 각색하고, 회사의 상호명은 공개하지 않았음을 밝히며, 회사에 대한 추측성 댓글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어느 매장을 가든 진상 손님 한 두 명은 꼭 있듯이, 어느 직장을 가든 진상 상사도 꼭 한 두 명씩 있기 마련이다.
진상 손님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손님인 자신이 이 매장에서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생각하진 않겠지만(=물어보면 아니라고 부인할 거지만) 간접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듯이 행동이 나올 때가 많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던 단골로 찾아와 매번 컴플레인을 걸고 아이스크림 심부름을 시켰던 할머니 손님도 그렇고, 진상 쪽은 아니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위층에 물이 없어 물을 채우러 가는데,
얼음은 아직 있겠거니 생각하고 물만 가지고 올라갔다. 올라가서 물 통 앞에 가니 어떤 아주머니 손님이
물통에 컵을 대고 물을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없어서 그냥 가려고 하길래 바로 달려가서 물을 채웠다.
근데 그 아주머니 손님이 갑자기 물을 채우는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얼음물을 채워야지~ 그냥 물만 채우면 안 차갑잖아~"
라고 말한 뒤 바로 "언니, 미워~!"라고 말하며 내 어깨를 살짝(아프지 않은 정도인데 찰싹) 때렸다.
통에 얼음이 조금 남아있는 상태라서 물만 가져온 건데 내가 생각을 잘못한 건가 싶어 바로 얼음을 퍼와
가득 차게 통에 부었다. 얼음이 녹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물만 채운 나의 잘못이기도 하기에 그 당시에 손님이 때린 건 딱히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말고도 본인 게 늦게 나오는 거 같다면서 환불해 달라고 노발대발해서 환불해서 음식을 먹고 간 손님도 있고(다른 단골손님의 가족이었다). 또한 할머니 손님처럼 단골로 오시는 아저씨 손님이 한 분 계셨는데, 자신이 매장 관계자랑 친하다고 하면서 안 되는 걸 요구하기도 했다.
직장 내 트러블을 유발하고 직상 상사와의 다툼으로 그만둔 전 직원이 지인과 손님으로 와서 매번 할인받고 먹는 경우도 있고, 다른 이유로 안 좋게 그만둔 전 직원이 손님으로 와서 우산을 휘두르고, 물이 든 컵을 바로 바를 집어던지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이곳에서 일했던 전 직원이 손님으로 오는 경우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차마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손님들을 이곳에서 다 만나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일 하나만 걸려도, 남들이 할 만한 흔한 실수
하나라도 남들보다 두 배, 새배로 우리 팀 팀장에게 크게 혼났다.
다른 팀원들이 그에게 실수해서 지적받고 혼나는 걸 본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팀원들이 나보다 일을
훨씬 잘해서 그런 것이 크겠지만,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도 있고, 몰랐던 것도 있었을 텐데 나한테는
큰소리로 화내면서, 다른 팀원들에게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를 보면서 한 편으로는 가족으로 치면 다른 형제자매들만 예뻐하고 나는 개차반(?)으로 차별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별받는 거 같아서 서럽다"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목청 터져라 외치고 있는데, 나는 다른 팀원들이 나보다 잘해서 그런 거겠지, 나만 못하는 거겠지, 내가 문제가 있는 거겠지, 내가 일을 하기 싫어서 저러나,, 일은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내가 일하는 분야를 깊게 하지 않으니 일주일 먼저 입사한 동기선임이랑 비교가 돼서 미움을 산건가 자기 합리화가 아닌 상황합리화를 하면서 내 마음을 외면했다.
(하지만 이게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라테아트 시험 며칠 전,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미들 근무자였는데, 그날따라 하루 종일 팀장에게 혼이 났다.
손님이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는데 응대를 어떻게 한 거냐고 혼나고, 컵 받침을 설거지 한 뒤 컵 바침들이
비슷하게 생겨 위치를 헷갈려 잘 못 뒀다가 혼나고, 음료 제조 공간 정리 못한다고 혼나고.....
그날 저녁,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돼 퇴사한 선임이 놀러 와서 바에서 다른 선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혼자 아트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 거치고 모양이 괜찮게 나온 거 같아 보여드렸더니 놀러 오신 선임과 다른 팀원들은 괜찮다고, 잘했다고 말하는데, 내가 한 거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쳇, 돈 주고 절대 안 사 먹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얼음이 되었고, 놀러 온 선임은 잘했는데 왜 그러냐며 그를 질책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자신이 왜 나한테만 두세 배로 뭐라고 하는지 아냐고 물어봤다.
모른다고 하자, 그는 내가 자신의 옛날 모습, 사회초년생 시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면서
답답하다고, 더 잘했으면 좋겠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 당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상황합리화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놀러 온 선임이 돌아간 뒤, 나의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마감 근무자인
그는 다른 팀원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위층에 올라가서
화장실 청소하고 오라며 퇴근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갔다 오라고 했다.
그렇게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잘못해서
그가 그렇게 화내는 거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소리치고 있던 서럽다는 생각은
도저히 떨칠 수가 없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있기 마련.
나보다 일주일 먼저 온 선임은 실수해도 딱히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나 보고는 뭐라고 하면서
그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와는 친해서 화기애애하기만 하다.
"나는 어디에서 미움을 산 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울분이 터지기 직전 청소를 마치고 내려와
퇴근하라는 말에 퇴근하려고 하는데, 다른 팀원 한 명이 내가 울분이 터지기 직전 상태인걸 눈치챘는지,
1층으로 내려가라고 말했고, 나는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참았던 울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뒤로 1층으로 부른 팀원이 뒤따라와 휴지를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원래 우리 팀장이라는 사람은 자기를 과시하는 편이고, 툭하면 욱하고 이상한 상황에서 화내는
사람이야. 하루 종일 너한테 사소한 걸로 뭐라고 했던 것도 사실은 억까이고. 그 사람이 너무 갈구면
사장님께 말씀드려."
이 말고도 팀원의 말을 더 들어보니 그는 내가 입사하기 전에 근무하다가 그와 트러블이 생겨 그만둔 팀원 2명이 있었고, 그는 그만둔 직원 2명 이후로 새로 온 직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데, 내가 입사하기
직전에 들어온 현재 팀원들이 그에게 잘해주었기에 그가 새로 온 직원에 대한 경계를 푼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가 다른 팀원을 갈구지 않은 이유는 한 명은 일을 잘하기도 하면서 그를 강한 기로 누른 것 같고, 한 명은 너무 잘하고, 다른 한 명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그런 거라면서, 그중에서 가장 만만 한 건 나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내 머릿속에 충격과 놀라움만이 남지 않았고, 이후 너무 울어 퉁퉁 부운 눈으로
퇴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진상 손님과 진상 상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지극히 내 기준이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차이점이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진상 손님은 손님인지라 그냥 한번 참고 지나가면 되고, 한번 보면 그만인데, 진상 상사는 같이 출근하는 사람이기에 매일매일 그 얼굴을 봐야 한다.
그러나 할머니 손님 같이 진상인데 단골로 오는 손님의 경우는 특이 케이스라 대처 방법이 필요하다.
손님은 모르는 사람이기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기에 주문을 받는 그 시간만, 응대하는 그 잠시의 시간 동안만 참고 리뷰가 달리더라도 그냥 지나치면 그만일 텐데, 상사는 그렇지 못하다.
손님은 다시는 안 본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대처할 수나 있지, 상사는 같이 일하는 사이인 데다
나를 대하는 그의 상태에 따라 나의 앞으로의 근무 생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강하게 대처할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이 답답하다.
두 번째는 경찰에 신고할 법한 손님들 제외하고 대부분의 진상 손님은 욕을 하면서 화내지 않고, 말도 존댓말로 하는데, 진상 상사는 말도 반말로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욕도 조금 섞어가며 화를 낸다.
손님들은 화를 낼 때도, 진상짓을 하고 나서도 잠깐 기분 나쁘고 잊어버리면 그만일 정도의 스트레스를 주는데, 진상 상사는 그렇지 않다. 특히 그의 경우 한번 혼냈던 걸 끝까지 우려먹어 두 번씩, 세 번씩 혼낸다.
두 번 세 번으로 갈수록 약해지긴 하지만 처음에 화냈을 땐 가끔 욕이 살짝 섞인다. 그래서 꾸준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상황의 대처가 다르다. 손님의 경우 진상 짓을 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아
화를 내고 있으면 가장 오래 일한 선임이 와서 커버 쳐주는 게 대부분인데, 상사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선임도 아니고 같이 일하는 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뭐라고 한다면, 나보다 오래 일한 선임이래도
그보다는 직급이 낮기에 커버를 쳐줄 사람도 없고, 특히 손님 앞에서 상사가 화를 냈을 때는 손님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즉, 이 상황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선임이 도와주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보통 혼자 견뎠고, 뒤에서 선임들이 그에게 나를 너무 갈구지 말라며 뭐라고 했다고 한다.
앞으로 나는 나에게 닥친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 것일까?
TMI
1. 그는 내가 본인 때문에 울분이 터졌었다는 걸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았을 때,
왜 자기 때문에 울었냐며 집요하게 물어보고 계속 웃었다.
1-1. 지난 에피소드에서 바를 다쳤을 때 그가 비 웃은 거 같다고 한 것은 다친 다음 날, 그가 내가
다친 걸 뒤늦게 알고는 "너 하수구 구멍에 빠졌다며?" 하면서 웃을 상황이 아닌데 푹하고 웃기 직전의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또 바보 같이 장단 맞춰준답시고 저절로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2. 그렇다고 나도 잘하기만 했던 건 당연히 아니었고 다른 팀원에 비해서 실수와 잘못을 많이 했었기에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그냥 억까만은 아니었다고, 그가 했던 말 중에서 가끔 맞는 말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브런치 카페 에피소드는 해당 에피소드를 포함한 총 6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번 에피소드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원래 5편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내용이 길어질 것 같아 한편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직장 에피소드는 그동안의 직장 에피소드 중 최장 편으로, 근무하면서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너무 잦았기 때문에 풀어나갈 이야기가 많아 다른 직장 에피소드보다 한 에피소드 당 내용도 훨씬 더 세부적이고 많을 예정입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브런치 카페 에피소드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