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천국의 문

무지개 다리 건너 우리 다시 만나요.

by 벗곰

- 츄르, 좋아해? 나도 먹어 봄.


어느 날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 글에 댓글을 달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기사의 내용은 이러하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여성을 상대로 한 남성이 법적 분쟁을 걸었다. 그녀가 돌보던 고양이들이 그의 값비싼 차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성은 소송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은 합의 없이 종결되었다.


기자가 왜 이 기사를 인터넷에 올렸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이 기사가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나는 단지 그녀가 가여운 고양이를 돌보던 사람이었다고 해서 그녀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나를 정말 놀라게 했던 건 단순히 기사의 내용이 아니었다. 그 기사에 달린 대부분의 댓글이었다.


거의 모든 댓글이 그녀의 죽음을 조롱하고 있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 나도 물론 고기를 잘 먹는다. 나도 내 늙은 개를 끔찍이 사랑했고 그 녀석을 위해 고기로 만든 사료와 고기 그 자체를 많이 소비했다. 나의 늙은 개는 누구보다 노련하고 잔혹한 사냥꾼이었다. 녀석이 정말 아주 늙은 개가 될 때까지 우리집 마당에서 살아서 빠져나간 작은 생물은 거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잘 안다.


그 기사 속 여성이 설사 죽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을 향한 그 비난으로 가득한 댓글만으로도 분명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하찮은 연민과 일관성 없는 기준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어쩌면 그 기사를 올린 사람은 꼭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그 기사를 가져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 기사 속 그녀를 고소한 글쓴이도 실제로는 상당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수도 있다. 타인으로부터 동정을 받거나 공감을 받기 위해 그 글을 올린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이야기를 엄마와 동생이 있는 자리에서 꺼냈다. 나는 말했다.


‘야 민심 좀. 내 세상에 이렇게 비정한 인간들만 있는 줄 몰랐다.’


나는 외제차를 소유해 본 적이 없다. 세상 그 누구도 길고양이 한 마리의 목숨과 외제차를 맞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는 생명이 아니다. 원한다면 누구든 동일한 모델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이름 없는 길고양이라고 해도, 그것은 살아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순수했던 사람 역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었다.


그 기사에 달린 대부분의 댓글은 그 여성을 ‘미친 사람’이라 했다. 그녀에게도 분명 글 밖에 존재하는 잘못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어째서 그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지?

나는 그 ‘용감한 전사들’에게 상당히 실망감을 느꼈다.


동생은 간단히 대답했다.

“누나, 인터넷 좀 그만해.”

엄마는 말했다.

“죽은 여자가 좀 이상하다. 어리석다. 고양이 밥 주기 전에 병원부터 다녔어야지.”

.

.

.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가구당 차를 한 대 정도는 갖고 있다. 외제차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절을 넘어서 이제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길고양이는 그런 차에 발톱을 긁는다. 달리는 차에 뛰어드는 고양이는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도시에서 사는 길고양이는 더러운 시궁창 쥐와 비슷하게 취급 받는다. 그들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다 찢어 놓고, 그 위로 진짜 쥐와 바퀴벌레가 끓는다.


내 예전 직장 동료 중 한 명도 캣맘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말했다. 일단 한번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줘야 한다고. 왜냐하면 길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서로 먹이를 나눠 먹지 않기 때문이란다.


어느 날 그녀가 돌보던 길고양이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되자 그녀는 그것의 장례식을 치렀다. 동료들을 설득해 그 고양이를 묻으러 가는 길에 울면서 따라갔다고 다른 동료가 내게 알려주었다.


어떤 초등학생이 길고양이를 괴롭히면 그녀는 참지 않았다. 그녀는 나서서 싸웠다.


그녀의 헌신에 비하면, 나의 헌신은 그냥 일종의 취미에 가까웠다.


그녀가 나에게 몇 번 고양이 밥을 대신 챙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부탁을 남몰래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예전 직장 상사는 고양이를 무서워했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해가 될까 그녀가 준비한 길고양이 밥을 부지런히 갖다 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른 직장 동료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


단언컨대 나는 그녀가 그 직장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사회복지시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

.

.

내 늙은 개가 죽기 전 나는 고양이용 캔 사료를 잔뜩 샀다. 왜냐하면 고양이용 캔은 강아지용보다 기름기가 많아서 나의 늙은 개가 훨씬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건강에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개는 나이가 너무 많았고, 몇 달 전 크게 아팠기 때문에 나는 녀석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무엇을 원하든 죽기 전에 좋아하는 것을 실컷 먹게 해주고 싶었다.


나의 개는 그 캔을 거의 먹지 않았다. 녀석이 죽고 간식을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양의 고양이용 캔이 남았다. 나는 그것들을 모아 내 예전 직장 동료였던 캣맘에게 주었다. 그녀는 상당히 고마워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나는 십여 년 가까이 나의 개가 물어 죽인 작은 동물들을 많이 묻었다. 길고양이뿐만이 아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크고 작은 쥐와 새들이 우리집 마당을 살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 중에는 아주 어린 고양이들도 제법 있었다. 큰 개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르는 그 순진한 침입자들은 겁도 없이 마당으로 넘어 들어왔다. 나의 개는 결단코 그들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내가 그 시체를 빼앗으려고 하면 나의 개는 장난감처럼 그것을 물고 뛰어다니며 신이 나 고개를 털어댔다.

그 작은 사냥감들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용감한 나의 친구는 그 성공과 성취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너무나 순진한 태도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사실 우연히도 그녀의 개와 나의 개는 이름이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개는 실내에서 키웠던 작고 온순한 하얀색 말티즈였다. 반면 나의 개는 일평생 마당에서 홀로 지내며 대한민국의 혹독한 사계절을 온몸으로 견딘 강하고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

.

.

한국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은 그렇게 믿는다. 자신들이 죽으면 먼저 간 고양이들이 무지개 다리 넘어 천국의 문 앞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그녀 역시 천국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들의 친구들이 내 털복숭이 친구를 너무 미워하지 않기를.

어차피 그들 모두 같은 마을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keyword
이전 10화[단편] 도둑과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