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함 주의, 독자에 따라 19금 이상 관람가 요망
- 풍문으로 들었소.
김복순. 1958년생. 고졸.
‘이 아줌마 좋겠네.’
우아한 손이 그만큼 우아한 찻잔을 들어 올렸다. 향긋한 얼그레이 티를 입으로 가져가며,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테이블 위로 이런저런 서류가 잔뜩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오빠 집에서 일할 가사 도우미를 고르고 있는 참이었다.
그녀의 오빠는 바쁘다. 왜냐하면 재벌 2세이기 때문이다.
오빠는 제법 오래전 이혼을 했다. 집안에서 맺어준 정략결혼이었다. 결혼 생활은 10년 정도 지속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랑 없는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랑이라, 그래, 그녀는 찻잔을 다시 입에 가져갔다. 입꼬리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비웃음과 냉소가 잠시 머물렀다.
아무튼 오빠가 이혼남이 된 것은 자신에게 결과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올케의 부재로 인하여 오빠의 집안일을 대신 신경 써야 했다. 사실상 안주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영향력은 아버지의 유산을 공평하게 물려받는 것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그녀에게 대놓고 자랑할 수는 없을 은근한 즐거움을 가져왔다.
얼마 전 오빠네 집 가장 나이 어린 가정부가 집을 나갔다. 사실 가정부는 아니고 조카의 새로 고용한 가정교사였다. 그녀를 고용할 당시 오빠가 말했다.
‘야 좀 수준 맞는 여자로 골라봐. 너는 오빠 마음을 그렇게 모르냐.’
벌써 흰머리가 부옇게 올라오는 주제에 오빠는 그녀에게 은근히 짜증을 냈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제법 예쁘고 젊고 똑똑한 – 오빠 취향에 꼭 맞는 싸구려 인형같이 이쁜년 - 가정교사’를 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오빠가 그 어린년을 ‘건드렸다.’
정확하게는 두 연놈이 눈도 맞고 배도 맞았다. 조카년이 이 사실을 알았다.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오빠는 결국 그 젊은 가정교사 년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조카년이 지가 무슨 잘못을 한 줄도 모르고 언론에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겠다고 협박을 떠는 것을, 조금 혼내 주었다. 귀찮아 아무튼. 순진하다니깐.
책임감 있게 집안일을 좀 제대로 돌볼 사람이 필요해 – 이번에는 내가 골라야지.
그녀의 가늘고 우아한 손이 다른 종이를 집어 들었다.
- 김복순. 1958년생. 고졸. ○○물산 산하의 직원 식당 조리실 근무. 퇴직 후 비등단 시인으로 잠시 활동.
사진을 봤다.
적당히 못생겼다. 합격.
적당히 배웠다. 합격.
이 정도면 합격이다. 눈치껏 시키는 일이나 하고 주는 돈이나 받아 가게 생겼다. 푸근하니 마음씨가 좋아 보였다. 이런 스타일은 나이가 많든 적든 결코 오빠의 눈에 들 미모가 아니다. 그녀는 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2.
‘아 안 먹는다고요.’
소녀가 숟가락을 탁자 위에 탕 하고 내려놓았다. 뒤돌아서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식탁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회장님의 안색이 어둡다.
어휴, 저 지랄 맞은 년.
회장님도 식사를 하다 말고 일어섰다. 결국 식탁에는 먹다 남긴 송이 갈비찜이며 전복 삼합이며 참기름 솔솔 뿌린 명란젓을 비롯하여, 그녀의 회심의 메뉴인 트러플 오일을 뿌린 계란말이까지 고스란히 남았다. 어휴 이 황태채 볶음에 더덕무침에 도가니탕까지. 오늘 아침부터 정성스레 만든 아까운 음식들을 또 고스란히 버려야겠구나. 김복순 여사는 그것들이 아까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녀는 회장의 딸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김복순 여사는 자신이 이런 부잣집 가사 도우미로 돈을 벌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호화스러운 삶을 제 눈으로 직접 구경하게 될 줄이야.
그녀는 젊었을 때 거대 기업 산하의 그만큼 거대했던 회사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했다.
김복순 여사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도 엄밀히 따지자면 대기업 직원이었다. 주방 보조였지만 정규직 대우를 받았다. 회사 차원에서 상여금도 나왔고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자식들은 무사히 잘 자라주었다. 자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아이들은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을 얻었다. 그녀는 무사히 은퇴했고 취미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김복순 여사의 시는 제법 주목을 받았다. 주방 아줌마를 해도 역시 대기업 출신이 다르긴 다르다고 –라는 문단의 평이 이어졌다. 이런저런 인맥으로 그녀의 시는 세간의 입소문을 탔다. 사실 작품 자체는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소박한 삶의 진실을 아름답게 찬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심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시를 칭찬하는 사람치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을. 심지어 그녀 자신까지 포함해서.
아무튼 김복순 여사는 제법 명성을 얻었다. 방송에 출연도 했다. 은퇴 이후 아름다운 삶, 제2의 인생의 시작 –이라는 주제였나? 그녀의 자식들이 그 방송을 봤다.
사별한 남편도 천국에서 자신의 시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그녀가 마지막 멘트를 날리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 몇몇은 눈물까지 흘렸다. 뿌듯했다.
어찌 알았는지 자신의 예전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김복순 여사에게 어떤 식으로든 후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역시 대기업이 최고라니까. 걸레를 한 장 빨아도 부잣집 똥걸레를 빨아야 해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김복순 여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녀는 이 호화로운 저택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줌마, 이것 좀.’
소녀가 무엇을 내민다. 빨랫감이다.
‘저 실수 좀 했어요. 신경 좀 써줘요.’
받아 들고 보니 피 묻은 빤스다. 그것을 이불에 돌돌 말아 내민 것이다. 생리혈을 온통 묻혀 놓았다. 어휴 칠칠맞은 것.
알겠다고 대답하고 세탁실로 갔다. 이불에 묻은 피를 손빨래로 지우고 세탁기에 넣는다. 그다음은 피 묻은 빤스 차례다.
‘일평생 지 손으로 빤스 한 장 빨아 본 적도 없는 년.’
김복순 여사는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한 줌도 안 되는 빤스를 정성껏 손으로 박박 비벼 빨았다. 이까짓 것 한 장 정도는 제 손으로 직접 빨아 세탁기에 던져 놓을 법도 하건만, 누가 애미 없이 큰 년 아니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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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년이 또 말썽이다. 이번에는 죽겠다고 수면제를 처먹었다.
듣자 하니 회장한테 잔소리를 좀 들었단다. 회장이 어느 여배우년하고 또 붙어먹었단다. 그 사실을 공주가 알았다. 그 때문인지 공주년이 새빨간 비키니를 입고 SNS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회장이 난리가 났다. 공주를 불러다 난생처음 야단을 쳤다.
공주가 대들었다. 아빠나 잘하라고 짜증을 냈다. 아빠는 아빠 마음대로 사는데 내가 그까짓 비키니 사진 몇 장 올린 것이 뭐가 대수냐고. 그것을 문제 삼는 인간들이 촌스럽고 유치한 것이라고 대들었다.
회장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공주년의 신용카드를 압수했다.
공주가 결국 자기 생모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다.
회장의 전처가 집으로 찾아왔다. 둘이 서재에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질 않았다. 약간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김복순 여사는 당연히 모른 체했다.
한두 시간이 흘렀나. 얼굴이 벌게진 회장의 전처가 서재를 나왔다. 인사도 받지 않고 씩씩 거리며 돌아가버렸다.
그날 저녁 회장은 또 밥을 먹지 않았다.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단 두 식구 먹으라고 차린 이 호화스러운 밥상이 또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시발 그놈의 비키니 처 입든지 말든지, 김복순 여사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될 영광굴비 한 마리가 더 아까웠다.
저거 몰래 싸갖고 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참았다. 내가 아무리 부잣집 종년이라고 해도 이것은 아니지. 회장이고 나발이고 내 자식 같았으면 등짝을 크게 후려갈기고 한소리 퍼부었을 것인데. 상놈의 새끼가 어디서 시앗년을 보누. 그러니까 이혼이나 당하지. 자고로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 법이거늘.
아무튼 그런 일이 있고 며칠 뒤 결국 사고를 친 것이다.
공주가 약을 많이 먹지는 않았다. 않았다고 하더라. 아무튼 이 잘난 집구석 주치의 양반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김복순 여사는 일하다 말고 그들 뒤를 따라다녔다. 구급차가 왔고 어린 소녀는 병원으로 향했다.
김복순 여사는 내심 걱정이 들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 난리를 피웠으니, 내일이면 인터넷이고 뉴스에 일파만파 이 사건이 알려질 것 같았다. 시끄러워질 것이다.
그런데 어째 다음날 그 어디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회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는 무사히 퇴근했다. 공주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집안의 어느 누구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없다.
김복순 여사는 자신이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나 싶었다.
등줄기에 서늘한 공기가 스쳤다.
그 뒤로 그녀는 말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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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순 여사는 여느 때처럼 회장님의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작은 약통 하나가 구석에서 굴러 나왔다.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프로작(Prozac). 우울증 약이다. 나약해 빠진 것들.
그녀는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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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순 여사는 모처럼의 휴가를 얻었다. 회장은 해외 출장을 갔다. 작은 공주마마는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그녀는 빈집을 청소하는 일 말고는 그다지 하는 일이 없던 차였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김복순 여사의 친구들은 그녀가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한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무엇인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어휴,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해. 별거 없지 뭐.’
대충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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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순 여사는 이따금 장을 보기 위해 저택을 나섰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곧 깨달았다. 파파라치였다. 웃겼다. 물론 김복순 여사의 파파라치는 그녀의 사진을 찍으려고 따라붙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녀에게 은근슬쩍 말을 걸어왔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김복순 여사는 가급적 웃으며 말을 피했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런 자신의 처신에 자부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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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오후였다. 그날따라 회장님이 황급히 집에 귀가했다. 형식적인 인사도 건네지 않고 자기 혼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날은 저녁도 걸렀다. 김복순 여사는 일찍 퇴근했다.
다음날 출근한 그녀는 욕실 문을 열었다. 세탁 바구니를 들고.
- 젖은 팬티와 바지다. 샴푸 냄새가 아직 남아 있다. 그녀는 한눈에 알아차렸다.
3.
평범한 하루였다. 아니, 오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회장님이었지만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미리 대기시켜 놓은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며칠 후에 그의 사진이 인터넷을 장식할 것이다.
‘회장님의 소박한 점심 – 달라진 재벌 2세, 겸손에서 비롯된 그의 소탈한 경영철학’이라는 제목과 함께.
아무튼 그는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겨우 욱여넣었다. 우리 집 아줌마도 구내식당에서 일했다던가. 그래서 그런가 어딘가 비슷한 느낌이 있다. 다만 좀 역시 싼마이 하군.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저렴한 식사를 해서 그런가 고급스러운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었다. 물론 사무실에서 게이샤나 파나마 에스메랄다를 주문해 마실 수는 없다. 그냥 스타벅스 한 잔 땡기자. 달달한 라떼로.
커피를 마신 뒤 30분 정도 지났을까.
속이 이상했다. 점심을 잘못 먹었나, 조합이 잘못되었나, 아무튼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부글부글 꾸르르륵.
방귀가 나왔다.
부글부글 꾸르르륵.
방귀가 계속 나왔다.
부글부글 꾸르르륵, 뿌직.
...... 응?
‘아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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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황급히 집으로 귀가했다. 다행히 오후 미팅은 없었다.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욕실로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욕실 문을 걸어 잠그고 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시발, 지렸어.
어쩔 수 없다. 이것을 그대로 빨래통에 던져 넣을 수는 없다.
그는 손수 빨래를 시작했다.
난생처음 손빨래라는 것을 해본다. 일단 물에 대충 헹궜다. 비누, 비누가 어디 있지?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다. 비누 한 장이 없다. 하긴 이 대리석타일이 발린 고급스럽고 근사한 욕실에 빨랫비누 따위는 어울리지 않지. 아무튼 좋아, 이 없으면 잇몸이다. 그는 샴푸통을 집어 들었다.
‘이 정도면 아무도 모를 거야.’
젖은 바지와 팬티에 코를 가져다 댔다. 아직 약간 냄새가 나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그가 쓰는 최고급 샴푸의 우아한 향이 그의 죄악을 감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돈이 해결해 줄 것이다.
젖은 바지와 팬티를 세탁물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샤워까지 마치고 태연하게 욕실을 걸어 나왔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저녁 식사를 권했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그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살며시 미소 지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우아했다. 그의 자주색 실크 가운만큼.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하나둘 가로등 불빛이 서재로 스며든다. 그는 와인을 한 잔 따랐다. 잔을 들고 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에 비친 자신은 여전히 잘 생겼다. 만족스럽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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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존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과 일체 무관하며,
만약 유사성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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