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마을의 잔혹동화
- 용서는 비극의 반복을 부를 뿐.
사랑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 중 누군가 말을 꺼냈다.
어떤 여인의 55년간 지속된 사랑에 대하여.
후작 부인은 손뼉을 쳤다. 누군가를 55년간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여인은 분명히 행복했으리라.
그녀의 사랑을 받은 남자는 분명 세상 그 누구보다 고결했으리라.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 파랑새 마을의 화가 슈크레 씨다.
그는 분명 ‘남성’이며 그를 사랑한 사람은 일평생 그의 주변을 서성이던 그림을 그리던 한 노파라고.
사람들은 실망했다.
누군가를 55년이나 사랑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고작 한때 자신들이 금화 한두 푼으로 불러낼 수 있는 부류의 천한 환쟁이였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더불어 그 순결한 사랑의 주인공이 고작해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천한 노파였다는 사실에 대해.
그들은 그런 고귀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지능은 자신들과 같은 상류층의 전유물이라고 여겼으므로.
의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들을 위해 준비해 온 주사기에 담긴 하얀색 액체를 한번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림을 그리던 노파는 사실 슈크레 씨를 서른 즈음에 처음 만났다.
그들의 첫 만남은 마을에서 매년 열리는 큰 축제에서 이루어졌다. 그 이름 없는 중년 여성은 슈크레 씨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재능과 그에 비해 지나치게 화려한 아름다움을 가졌던 슈크레 씨는 그 중년 여성의 마음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는 그보다 그녀가 늘 갖고 다녔던 스케치북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그 중년 여성의 스케치북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을 낱장으로 찢어 물감을 약간 덧발랐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후견인을 찾아갔다.
그 당시 슈크레 씨를 후원했던 이는 젊은 귀족 여인이었다. 화려한 미모에 비해 지극히 소박했던 슈크레 씨의 그림 솜씨만큼이나, 그 귀족 여인 역시 자신의 신분에 비해 지나치게 경박한 취향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슈크레 씨의 환심을 사고 그와 은밀한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그 그림을 샀다.
그것을 대충 모아두었다가 유명 화가들이 초대된 사교 모임에 갖고 나갔다. 그 자리에 모인 유명 인사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대체 누가 이 그림을 그렸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 귀족 여인은 단숨에 사교계에서 가장 고상한 취향을 가진 후견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 귀족 여성은 이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사교계의 명사였던 황태자와 연줄이 닿았다.
그녀는 슈크레 씨를 불러 조용히 타일렀다. 우리의 은밀한 만남은 지속될 것이고 너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나는 너의 비밀을 알지만, 그래도 너를 용서하고 너를 사랑한단다.’ 슈크레 씨는 입을 다물었다.
그림을 그리던 노파는 잦은 기침에 시달렸다. 그녀는 그림을 몇 장 팔아 번 돈으로 마을의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노파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측은한 마음에 슈크레 씨를 멀리하라고 충고했다. 노파는 쓸쓸히, 그러나 확신에 차서 말했다.
‘선생님, 그는 제가 이 세상에서 본 유일한 남자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알기 전까지 세상에 남자라는 존재가 있는 줄도 몰랐답니다.’
슈크레 씨는 그림 그리는 노파를 가끔 찾아왔다.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를 선물이랍시고 들고 와 그녀의 그림과 맞바꾸어 갔다. 그것은 교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절도에 가까웠다. 영혼의 절도 – 의사는 그것을 그렇게 불렀다.
노파는 그가 자신의 그림을 훔쳤고, 또 그 그림을 이용해 귀족 여인과 놀아났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림을 더 훔치기 위해 자신을 방문한다는 사실까지도.
노파는 슬퍼하며 마을에 있는 파랑새 연못에 몸을 던졌다. 누군가 우연히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목숨을 건졌다. 슈크레 씨가 그녀를 찾아왔다.
슈크레 씨는 상냥하게 그녀를 달랬다. 당신의 재능은 신이 준 선물이다. 당신 같은 재능있는 여인은 인류의 보물이다. 당신 같은 존재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 쉽게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니 더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
노파는 단숨에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노파는 평소에 대부분 그녀의 집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 어쩌다 기침약을 사기 위해 그 마을의 의사를 가끔 찾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이따금 팔았다. 그리고 열심히 돈을 모았다. 노파는 말년에 이르러 뜻밖에도 재산을 약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슈크레 씨에게 전부 유산으로 남겼다.
의사가 노파의 사랑 이야기를 마쳤다.
듣고 있던 후작 부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가여운 사랑이라니! 세상에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여성뿐이로군요!’
의사가 싸늘하게 말했다.
‘글쎄요, 그 여인은 아주 재능이 있었고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만, 확실히 어리석었지요. 약간,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었달까.’
의사는 무심히 하얀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만지작거렸다. 오늘 그의 고객들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다. 사실 그들은 이 하얀색 액체를 원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어느 날 나의 ‘파랑새’가 이 사연을 물고 왔다.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주: 본 작품은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단편 La Rempailleuse(한국어 번역 제목:「의자 고치는 여인」)에서 모티프를 얻어 창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