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봄날이었다. 나는 청 과부의 집에 놀러 갔다. 청 과부가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삯바느질을 하고 있던 청 과부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나의 작은 하얀 개와 함께 그녀를 찾았다. 청 과부는 나의 개를 좋아했다. 청 과부의 늙은 개는 이미 죽었지만, 그녀의 개와 나의 개는 이름이 같았다. 청 과부는 나의 개가 아직 살날이 많다는 사실을 부러워했다.
‘아줌마, 속옷 장사는 잘돼요?’
청 과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영 인기가 없다고 했다. 그 사건 이후 ¹ 청 과부는 이웃 마을 홀아비에게 새로 시집을 갔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벌러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청 과부는 또 소박을 맞고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그가 다시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고 청 과부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청 과부에게 개를 한 마리 다시 기를 생각이 없냐구 물었다. 청 과부가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지만 개는 아무나 기르면 안 돼. 아무나 기를 수 있지만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아무튼 청 과부는 요즘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했다. 한 땀 한 땀 정성껏 지은 속옷들이 하도 안 팔려 삯바느질로 한 달에 몇십만 원 겨우 벌어 근근이 먹고 산다고 했다.
청 과부의 늙은 아버지는 여전히 농사를 짓고 그녀를 부양한다.
얼마 전 어버이날이었다. 청 과부는 돈이 없어 용돈 대신 글을 몇 편 지었다고 했다. 그것을 부모님께 선물로 드렸다. 청 과부의 늙은 부모는 시골 무지렁이들이라 그녀의 글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매우 기뻐했다고 했다. 그러나 청 과부는 썩 마음이 좋지 않았다.
왜냐면 청 과부도 SNS를 하기 때문이었다. 파랑새 마을 김 여인 ¹ 이 오만 원짜리 현금으로 카네이션 꽃다발을 만들어 어버이날 선물을 했답시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청 과부는 속이 많이 상했다.
김 여인은 청 과부와 한바탕 소란 ¹을 일으킨 후 결국 파랑새 마을 최고 부자 김 노인 소유의 후처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김 여인은 팔자가 바뀌었다. 비단옷을 입고 꽃가마를 타고 읍내를 돌아다녔다. 수시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마을 사람들은 청 과부의 글에는 십원 한 장 쓸 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김 여인이 비단옷을 입고 브런치를 처먹거나 이미 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대본을 몇 마디 읋어 대는 모습을 구경하는 데는 기꺼이 시간을 쓰고 귀한 엽전을 갖다 바쳤다.
청 과부는 글을 좋아했으므로 그 글의 출처가 어디인지 이따금 알 수 있었다.
청 과부는 이제 먹물 살 돈도 없다고 중얼거렸다. 이래서 새로운 강아지는 고사하고 굶어 죽겠다면서.
나도 속이 상했다. 청 과부가 좀 못생기고 뚱뚱하고 나이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굶어 죽어야 할 이유는 없는데. 제아무리 소신껏 자기만의 길을 가는 청 과부라고는 해도, 그렇게 절대적인 사회적 보상의 차이에는 의욕이 꺾일 법도 했다. 청 과부는 담담히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 예부터 높으신 분들은 나같이 미천한 여인네들이 계몽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청 과부도 사람인지라 속상한 마음에 갖고 있던 종이책을 모조리 중고 시장에 팔아버렸다는 것을. 안 팔리는 책들은 싹 끌어모아 분리수거함에 투척했다. 택배비를 제외하니 몇 푼 되지도 않았다.
차라리 쓰레기봉투 한 장 값이 더 비쌌을 것이다.
청 과부는 제 드러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엉엉 울고 말았다. 시발, 족가타 잘못 태어났어 아 시발 재수가 왜 이렇게 없어 신세 완전 조저따리 이생망 시발 엉엉엉 – 청 과부가 우는 소리를 듣고 청 과부의 아버지가 달려왔다.
청 과부는 집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종이책을 모조리 박박 찢어발겨 놓고 있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찢고 또 찢고 아주 방구석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를 본 청 과부의 아버지가 청 과부를 달랬다.
세상 일이란 모르고도 속고, 알고도 속는 것이라고.
나는 청 과부에게 물었다. 김 여인처럼 부잣집 늙은 영감에게 후처로 들어가 볼 생각은 없나. 살 좀 빼고 얼굴에 분칠을 한 다음 SNS에 사진을 올려보라고 했다. 청 과부는 글을 잘 쓰니까 미모는 좀 부족해도 제법 소질이 있어 보였다. 곧 송장 취급받고 관짝에 못질이나 당하게 될 늙은 영감들 기준에서 청 과부는 한창이라는 소리를 들을 터였다. 혹시 모를 일이었다. 조금만 참고 살면서 똥기저귀라도 몇 번 갈아주면 유산이라도 한 푼 물려받지 않을까.
청 과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불현듯 김 여인이 시집가는 날 의기양양했던 표정을 떠올렸다. 고 예쁘장한 얼굴에 발라진 고운 분과 향긋한 분 냄새까지.
‘아무튼 그 장사는 한 철 장사야. 난 이제 글렀어.’
청 과부는 말을 돌렸다. 사람이란 결국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어 있으며, 어차피 가치관의 문제일 테니 피차 서로 선택을 존중하면 된다고.
청 과부는 나에게 자신이 다녔던 예전 직장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 그녀는 병든 노인들을 모아 감금한 후 하루 종일 보살피는 시설에서 잠시 일을 했다고 했다. 그곳에는 대부분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앓는 노쇠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청 과부는 자신의 늙은 아비가 혼자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생하는 꼴이 마음에 안 좋았다고 했다. 용돈이라도 벌어 써볼 심산으로 그곳에 취직했는데, 그리 오래 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별에 별꼴을 다 보았다고 했다.
그 시설에 수용된 노인들의 대부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각각 별별 사연을 다 갖고 있었다. 그중에서 유별난 영감이 하나 있었단다.
그 영감은 취미가 이따금 바지를 내리고 가장 만만한 할매를 하나 골라 성추행을 하는 것이었다. 듣자니 처음 입소했을 당시에는 요양보호사들의 가슴을 쓱 만지고 지나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이 시발새끼가 꼭 최약체들만 골라서 지랄을 떨었는데 물론 청 과부도 못 볼 꼴을 몇 번 보았다.
직원들은 여러 번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센터장은 그 영감을 퇴소시키지 않았다.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비밀에 부쳐졌다. CCTV는 하필 딱 그 시간에만 녹화가 사라졌다.
청 과부의 아버지는 일평생 다정하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그녀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평소 성품은 역시 온화했다. 그래서 청 과부는 기본적으로 남자를 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심지어 청 과부는 그 옛날 서당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신식 학문도 조금 접했다.
거기에 더해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발딱 세운 채 당당히 CCTV에 찍힌 치매 걸린 남성 노인을 직접 마주하고 보니 – 그가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 쳐도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조가튼 시발...번더곧휴비더고자
그저 당장 저속노화 90일 플랜을 실천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막연히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복 없으면 오래 산다 각오해.
청 과부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었다. ‘난 틀렸어. 먼저 가.’
청 과부는 그것 말고도 몇 가지 사연을 더 늘어놓았다. 사실 그런 엽기적인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잠깐이었지만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잘 이해하게 되었고, 인생이란 생각보다 짧으며,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면서. 더불어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면 역시 무엇이든 직접 겪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같이 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과자를 나눠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청 과부는 정말 맛잘알이다. 돈도 없다면서 어디서 이런 맛있는 과자는 골라 박스 단위로 쟁여 놓고 먹는담. 청 과부가 씁쓸하게 말했다. 과자를 너무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그녀의 늙은 개가 죽고 청 과부는 과자를 아주 많이 먹었다고 했다. 눈이 침침해서 병원에 갔더니 혈당이 굉장히 높게 나왔다. 청 과부는 결국 당뇨 판정을 받았다.
나는 문득 궁금했다. 청 과부는 저렇게 건강도 안 좋고 돈도 없고 나이도 많은데, 그래도 계속 글을 쓸까?
청 과부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뭐, 운이 좋으면 어디 새로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은 건강이 좋지 않으니 아마 그렇다면 일과 글쓰기를 병행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이 될지는 자신도 모른다면서, 그나마 아직은 그녀의 아버지가 농사를 짓기 때문에 공짜 밥을 얻어먹고 산다고 했다. 그럭저럭 하루하루 지내면서 심심하니까 몇 줄 써보는 것뿐이라고.
어느새 해 질 녘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고향을 떠나 한양에 과거 시험을 치러 갈 예정이다. 아마 이제 청 과부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랐다. 청 과부는 대문 밖까지 나를 배웅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얘, 공부도 좋지만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것도 좋은 거야. 너는 늦기 전에 꼭 좋은 사람 만나. 나이 들면 송장 아니면 똥차야. 진짜 없어. 피차 쓰레기들끼리 서로 악에 받쳐 물어뜯고지랄발광 꼴에 후려치기는 그러니 너라도 꼭 너무 늦지 않게 좋은 사람 만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다지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청 과부가 쓴 글들이 좋았다. 청 과부는 잘 쓰지는 못해도 즐겁게 글을 썼는데,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사실 청 과부도 오래전 과거 시험에 몇 번 도전했었다고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합격하지는 못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온갖 부질없는 짓들만 골라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라는 것이 청 과부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아무튼 나도 청 과부처럼 글을 쓰며 살고 싶었다. 결혼이야 뭐, 팔자소관 아니겠는지.
나는 과거 시험에 급제할 수 있을까. 앞장서 총총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나의 작은 개가 문득 뒤돌아 멈춰 섰다. 언젠가는 청 과부의 개가 그랬듯 녀석도 내 곁을 떠날 것이다. 나의 개는 아마 청 과부의 개보다는 오래 살 수 있겠지. 잠시 쭈그리고 앉아 녀석을 쓰다듬었다. 보드라웠다. 따뜻한 온기가 손을 파고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조금 천천히 걷고 싶었다. 해 질 녘의 시간도 충분히 아름다웠기 때문에.
¹ 청 과부와 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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