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이

채워진 것과 비워진 것

by 주아유


'물이 절반 찬 컵' 이야기는 모두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반쯤 차있는 컵을 보고 부정적인 사람들은 "물이 반 밖에 없네."라고 생각하지만 긍정적인 사람들은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한다고요. 그러니 남아있는 것에 집중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메시지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반반이는 물이 절반 차 있는 컵입니다. 그동안 자신은 충분히 차 있는 컵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날 "넌 반밖에 없구나."라는 물병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집니다. 반반이는 가득 찬 컵이 되고 싶었습니다. 반쯤 모자란 기분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물속에 들어갔나 나오기도 하지요. 하지만 자신의 모습은 언제나 반만 차있는 컵입니다.

갖은 노력을 했지만 변하지 않는 자신을 보고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반반이. 거울 앞에서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반반이는 배가 몹시 아파옵니다. 급히 찾아간 병원에서는 이런 말을 듣게 되지요.

"반반아, 보렴. 몸 안에 모든 것이 완벽해. 물마저 정확히 반이나 채워져 있단다."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할지, 반밖에 없다고 생각할지는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는 걸 깨닫는 반반이는 다시 행복해집니다.

그림책 『반반이』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비교 속에서 결핍을 채우려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노력 끝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더 큰 공허함뿐입니다. 하지만 그 결핍의 의미를 마주하고, 내 안의 '반'을 들여다보는 행위 안에서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욕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결핍을 단순히 슬픔이나 좌절로만 여기지 않고 그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자기 수용'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보통 컵의 물을 보며 긍정적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물이 반이나 차있네, 반밖에 없네, 또는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걸? 이런 결론에 이르곤 하지만 아무도 컵 안에 무엇이 차 있는지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어쩌면 반반이 안에 차 있는 것이 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상처받기 싫어서 거리를 두려는 마음일지도, 사랑받고 싶지만 거절당할까 봐 숨기는 진심일지도 모릅니다. 반반이가 가진 그 '반'이 어쩌면 반반이의 진정한 욕구이자 꿈이자 아픔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전경과 배경의 개념은 반반이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할 때 배경은 흐려지고 그 대상만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선을 바꾸어보면 배경이었던 것이 새로운 전경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반반이의 채워진 반은 현재 가장 절실한 전경이 된 욕구들입니다. 지금 당장 반반이에게 가장 갈급하고 긴급한 내면의 목소리들이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비어있는 반은 잠시 배경으로 물러난 욕구들, 지금 당장은 뒤로 밀려났지만 언제든 전면에 나올 준비가 된 다른 욕구들의 대기실인 셈입니다.


지금 내 안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설령 달콤하지 않은 감정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진실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내 마음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두려움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거리를 두려는 내 마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면, 그 방어의 뒤에 숨어있는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미해결 욕구가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합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한 욕구들이 우리 내면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반반이는 어쩌면 이런 미완성된 부분들과의 화해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의식적으로 억눌러왔던 욕구들, 사회적 기대에 맞춰 숨겨둔 진짜 바람들, 실패를 두려워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은 꿈들. 이 모든 '반'들이 사실은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였다고 말합니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이 아닌, 바로 이 순간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반반이가 주는 가장 큰 선물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복잡하고 모호한 감정들, 완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상태가 바로 나의 현실이며, 이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성장이 시작됩니다. 무언가를 더 채우거나 바꾸려 하기보다는, 지금의 나를 온전히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입니다.


완전함이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면을 인정하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반'들이 서로 경쟁하며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채워진 것을 부정하거나 빨리 비우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왜 너는 지금 내 마음의 이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니?', '너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거야?' 이런 질문들을 통해 내면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게슈탈트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는 이미 완전한 존재입니다. 다만 그 완전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반반이는 그 인식의 전환을 도와주는 작은 안내자입니다. 내 안의 숨겨진 욕구들을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해지며, 마침내 그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이제 저는 반만 찬 컵을 보며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그 컵 안의 물과 공기, 컵 자체와 그것을 둘러싼 공간,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내 안의 '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며, 미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그 '반'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두려움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희망이든, 그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여기 살아있는 나 자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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