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알려준 소중함
"큰 늑대 작은 늑대"는 언덕 위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큰 늑대에게 갑작스럽게 작은 늑대가 찾아오며 시작됩니다. 큰 늑대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고자 작은 늑대를 경계하지만, 서로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따라 하며 한 공간에 머물게 됩니다.
언덕 위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큰 늑대처럼, 우리도 각자만의 안전한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집에서, 익숙한 사람들과의 관계 등. 살면서 만들어진 나만의 세계는 편안하고 예측가능합니다. 갑작스럽게 불쑥 찾아온 작은 늑대처럼, 우리 삶에도 새로운 이들이 나타납니다. 첫 만남에서 대개 본능적으로 경계하기 마련입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와 잘 맞을까?', '나보다 잘난 사람이면 어쩌지?' 큰 늑대가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고자 작은 늑대를 경계했든, 우리도 새로운 관계 앞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웁니다. 이미 완성된 내 세계에 누군가 새로 들어오는 건 부담스럽고 불안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대상에게 궁금증이 생깁니다. 작은 늑대는 큰 늑대의 행동을 조심스레 따라 하고, 큰 늑대는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작은 늑대를 챙겨줍니다. 처음엔 꺼려졌던 이의 존재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집니다. 점차 서로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함께 웃고, 때로는 의견이 달라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우리'가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작은 늑대가 사라집니다. 큰 늑대는 당혹스럽습니다. 처음으로 저녁을 먹지 않고 처음으로 잠을 자지 않습니다. 큰 늑대는 작은 늑대를 기다립니다. 처음으로 어떤 것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아주 작지만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해 버린 거죠. 큰 늑대는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작은 늑대가 돌아오면 나뭇잎 이불도 더 많이 주겠다고, 열매도 더 많이 주겠다고, 큰 늑대만이 아는 운동까지 다 따라 하도록 내버려 두겠다고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계절이 바뀌도록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다시 찾아온 작은 늑대를 보고 큰 늑대는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네가 없으니까 쓸쓸해."
"나도 쓸쓸해."
살며시 큰 늑대에게 머리를 기대는 작은 늑대를 바라보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언제까지나 작은 늑대가 함께 있을 거라는 결말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나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합니다. '어차피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어.', '금방 잊힐 거야'라고 자신을 속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빈자리는 점점 크게 느껴집니다. 함께 나누던 소소한 대화, 힘들 때 받았던 짧은 위로, 일상의 작은 기쁨을 나눌 수 있었던 순간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깨닫습니다. 그제야 그 사람이 내 삶에서 차지했던 진짜 의미를 깨닫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 존재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 사람이 내게 주던 일상의 따스함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이죠.
빈자리는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게 그 사람의 존재감을 말해줍니다. 외롭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수많은 후회를 합니다. 있을 때 더 잘해줄걸, 더 자주 고마워할걸, 더 따뜻하게 대할걸. 바쁘다는 핑계로 미룬 만남들, 표현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들이 하나씩 떠오르며 가슴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런 상실의 경험은 때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아픕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은 다음에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욱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커서 새로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 사람만을 위한 빈자리로 남겨두고 싶으니까요.
큰 늑대에게 작은 늑대가 돌아오자 마음 깊은 곳이 채워지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꼈듯, 우리도 그 순간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때의 관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겠지요. 처음의 경계심과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의 소중함을 아는 성숙한 관계가 자리 잡습니다. 서로에게 귀한 존재가 되어 평생을 함께 살아가기로 하는 큰 늑대와 작은 늑대처럼, 우리도 더욱 단단한 연결고리로 맺어집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현재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누구의 소중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 않냐고 말이죠. 매일 만나는 동료, 주말마다 안부를 묻는 친구,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가족들. 이들의 존재를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들이 만들어주는 일상의 작은 기쁨들, 함께 나누는 대화의 따뜻함,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시간들의 진짜 의미를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요?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고 혼자이길 자처했던 순간에도, 누군가가 곁에 나란히 와준다면 우리의 삶은 한결 너그러워지고 따뜻해집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 한편에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작은 늑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처받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 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다림, 상실, 회복의 과정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묻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심리적 여정은 모든 어른들이 겪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새로운 관계에 용기가 필요한 순간, 뜻하지 않은 이별의 아픔을 겪는 시간, 그리고 기다림과 배려로 관계를 다시 맺고 싶은 마음을 돌이켜 봅니다. 상실 이후의 후회가 아니라, 현재의 소중함을 알아보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큰 늑대가 작은 늑대가 사라진 후에야 그 존재의 의미를 깨달았듯 우리도 종종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지만, 이미 그때는 관계를 되돌리기 어려울 때가 많지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를 그리워하며 마음속에 묻어두어야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에 감사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이 내 일상에 가져다주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보세요. 함께 나누는 대화 한 마디, 건넨 미소 하나, 때로는 투덜거리며 나누는 불평조차도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인지 깨닫게 됩니다. 혼자만의 언덕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와 나뭇잎 이불을 나눠 덮고 함께 산책하며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것이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들 테니까요.
관계는 두려운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을 완전하게 만듭니다. 상실의 아픔을 겪더라도,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더라도,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가장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