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함께 있을게

죽음이 곁에 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주아유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바라보는 오리. 오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오리의 곁에 있는 건 누구일까요?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가 함께 있을게』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따뜻하면서 시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그림책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요. 긴 세월의 흔적이 간결한 그림으로 녹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오리의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죽음. 어느 날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는 죽음을 오리는 발견합니다. 검은 튤립을 등뒤에 감추고 퀭한 검은 눈을 한 죽음은 태연하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동안 죽 나는 네 곁에 있었어. 만일을 대비해서." 죽음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습니다. 그리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죽음은 오리의 곁에서 조용히 머무르거나 함께 연못에 놀러 가기도 합니다.


연못에서 신나게 자맥질을 하는 오리와는 다르게 죽음은 연못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축축한 연못을 두려워하는 죽음의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연못을 나온 오리는 추워하는 죽음을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죽음은 그런 오리를 미소 지으며 바라봅니다. 아무도 자신에게 그렇게 대해준 적이 없었거든요.

다음 날 눈을 뜬 오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이제껏 느낄 수 없었던 아침입니다. 죽음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둘은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연못은 고요하고 쓸쓸합니다. 오리는 생각합니다.

'내가 죽으면 저렇겠구나. 연못 혼자 외로이. 나도 없이.'

오리의 생각을 읽은 죽음은 알려줍니다. "네가 죽으면 연못도 없어져. 적어도 너에게는 그래."

시간이 지날수록 오리의 말수는 줄어듭니다. 연못에 가기보다 풀숲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날이 늘어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깃털 속을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에 오리는 죽음에게 부탁합니다.

"추워, 나를 좀 따뜻하게 해 줄래?"


오리는 숨을 쉬지 않고 조용히 누워있습니다. 죽음은 커다란 강으로 오리를 안고 갑니다. 조심스레 물 위에 오리를 띄우고 살짝 밀어줍니다. 오리의 위에는 죽음이 놓아준 검은 튤립이 놓여있습니다. 오랫동안 떠내려가는 오리를 바라보고 있는 죽음. 죽음은 슬펐지만, 그것이 삶이라고 되뇝니다. 오리를 떠나보낸 죽음은 다시 길을 떠납니다. 죽음 주위를 여우가 토끼를 쫓고 쫓았습니다. 삶은 계속되고 죽음은 그들 곁에 항상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삶과 함께 합니다.



죽음을 떠올리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요? 살아있다는 건 무엇일까요?


죽음을 곁에 둔 오리에게 아침은 기적입니다. "나, 아직 죽지 않았구나!" 죽음을 의식하기 전의 아침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찾아올 날들 중 하루일 뿐이죠. 우리는 막연한 확신 속에서 특별하지 않은 오늘을 보냅니다. 오리에게는 다시 맞이한 오늘이, 살아있음 자체가 경이롭고 감사합니다. 죽음을 외면할 때 시간이 무한하다고 착각하며 살지만, 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매 순간의 유한함과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마음을 많이 다쳐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 때, 세상에서 나만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를 짓누를 때가 있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 날 죽겠구나. 이렇게 언젠가는 모두들 죽겠구나.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생각이 꼬리를 물던 어느 날, 이대로 죽기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을 내가 한 번 제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싶은 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책임만 있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솟구쳤습니다. 죽음을 떠올리고 곱씹으며 생긴 변화였습니다. 내일이 올지 안 올진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나의 세상은 나와 함께 시작되고 나와 함께 끝나니까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 자체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죽음에 대해 대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리와 죽음은 함께 놀고,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를 위로합니다. 죽음을 친구로 맞이했을 때, 오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 존재에 대한 의미, 노화에 대한 공포. 이 모든 것은 죽음과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삶의 증상 아닐까요. 죽음을 의식하는 것이 불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리가 죽음과 함께 지내며 매 순간을 더 생생하게 느끼는 것처럼. 죽음을 생각하고 난 뒤에야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마음먹었던 것처럼 말이죠.


"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죽음조차 이별 앞에서 슬픔을 느낍니다. 마지막 장면을 붙들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죽음이 오리를 떠나보내는 장면이 슬프게도 아름답습니다. 검붉은 튤립을 안은 오리가 강물 위로 떠내려가는 장면은 참 평화롭습니다.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슬픔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사랑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책 속에서 오리와 죽음이 나무 위에 올라가 연못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오리는 문득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며 생각합니다. "내가 죽으면 저렇겠구나. 연못 혼자 외로이. 나도 없이."

연못은 내가 살아온 세계 그 자체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의 향기, 출근길에 듣는 음악, 퇴근 후 누울 수 있는 푹신한 침대. 이 모든 것이 나의 연못입니다. 연못은 또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서로 낄낄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는 모든 관계들. 이 모든 것이 연못의 물결이 됩니다.

연못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고요한 시간, 길가에 핀 들꽃, 가을의 냄새. 이런 작은 것들에서 느끼는 기쁨과 평화. 이것이 내 연못의 풍경입니다.

죽음이 말했든, 내가 죽으면 이 모든 연못도 사라집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겠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나'는 없습니다.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것들은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나의 연못은 지금, 여기에만 존재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이 순간에. 그러니 지금 이 연못을 충분히 느끼고, 경험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일 연못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여우와 토끼가 뱅글뱅글 쫓고 쫓기는 모습은 삶의 지속성을 보여줍니다. 한 생명이 가고 다른 생명이 계속됩니다. 죽음은 여전히 만일을 대비해 그들 곁에 있습니다. 오리의 연못은 사라져도 여우와 토끼의 연못은 계속됩니다. 그 뒤를 따라오는 죽음의 연못도 계속되겠지요. 우리는 각자의 연못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의 연못들은 서로 만나고 겹치고 물결을 일으킵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그 사람의 연못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연못에서 그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내 연못에 함께 있던 그 사람의 자리가, 이제는 빈 공간으로 남습니다. 그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 슬픔입니다.


오늘 하루도 나는 살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봅니다. 죽음이 언제 올진 모르지만, 그것은 삶과 함께 있습니다. 언젠가 내 연못도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슬픈 일만은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그 사실이 지금의 연못을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들 테니까요.



실존주의 철학과 그림책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근원적 불안을 인정하며, 죽음이 인간의 실존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임을 강조합니다. 에를브루흐의 이 그림책은 ‘죽음에 대한 자각’이 두려움이 아닌 삶에 대한 깊은 자각, 즉 나와 내 세계, 그리고 타인을 더 선명하게 느끼는 계기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리는 죽음을 대면하면서 점차 평온함을 얻고,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냅니다.

상담에서도 실존적 접근(예: 빅토르 프랑클, 어빈 얄롬)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진정한 자기 존재에 대한 책임과 자유, 사랑을 강조합니다. 『내가 함께 있을게』에서의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닌, 삶의 온전함—유한성의 인식 속에서 지금, 여기의 만남과 연결을 강조합니다.


『내가 함께 있을게』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 그리고 존재 곁에 함께하는 다정한 이들의 소중함을 전하는 작품입니다. 실존주의와 상담이 만나 삶과 죽음을 새롭게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더욱 인간적이고, 자유롭고, 책임 있게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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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