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그림자를 언제 만났을까?
양손에 꽃을 든 채 자신의 그림자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는 한 소녀가 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황금빛 들판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살퍄보고 있는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림자를 만나는 시간』은 이른 새벽 눈을 뜨고서 밤이 될 때까지 소녀와 함께한 그림자를 따라가며 맞이하는 순간들을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내면의 감정, 관계,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자의 사실적인 묘사와 아름다운 풍경, 시적인 글귀가 어우러져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집을 나서는 소녀의 뒤로 아주 작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눈여겨봐야 하는 곤충의 그림자입니다.
소녀는 친구들과 만나 이리저리 움직이고 춤추며 뛰어다닙니다. 다정한 그림자도 함께 뛰어다닙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그림자도 있습니다. 내게 드리운 걱정입니다.
걱정의 그림자는 새의 그림자처럼 날아오르다 파닥거리며 사라집니다. 소녀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가득합니다.
해 질 녘, 어스름 속으로 걱정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소녀는 집으로 향합니다. 집에는 따뜻한 그림자가 가득합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의 그림자, 낮에 꺾어온 꽃을 꽃병에 꽂아두고 있는 소녀와 곁에 있는 든든한 아빠의 그림자.
모두가 잠든 밤. 달빛이 그려놓은 그림자도 있습니다. 물 위에 펼쳐진 달빛이 참 아름답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습니다. 맑은 날 햇빛 아래 드리운 그림자.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지고 짧아지며 형태를 바꿉니다. 어린 시절, 처음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내 몸을 따라 움직이는 까만 형체를 보며 느꼈던 생경함과 호기심,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동생의 그림자를 밟기도 하고 손으로 새를 만들어 날려 보내기도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림자는 늘 나와 함께 걷고 있지만 어른이 된 이후 우리는 그림자를 무심히 지나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림자를 잊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 마음의 밝음과 어스름이 교차하는 순간, 그림자는 우리 내면의 풍경을 닮아갑니다. 걱정의 그림자, 두려움의 그림자, 기대와 슬픔의 그림자. 브루스 핸디는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감추어진 내면을 시적으로 보여줍니다.
밤의 끝자락을 슬며시 드러내고 있는 새벽의 그림자. 길게 늘어난 그림자는 어제의 피로와 오늘의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정오가 되면 그림자는 발밑으로 웅크립니다. 한창 바쁜 시간,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때 그림자도 가장 작아집니다. 더욱 짙어져 있지만 눈길 한 번 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해질 무렵, 그림자는 다시 길어집니다. 언덕처럼 큼직한 그림자는 하루 동안 떠안았던 책임과 고단함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발끝의 작은 그림자는 살며시 깃든 불안의 흔적입니다.
그림자를 따라가는 일은 결국 자신을 돌아보는 길입니다. 바삐 움직이고 스스로를 잊은 채 지내다가 문득 멈춰 섰을 때, "나는 오늘 내 그림자를 만났을까?"라는 질문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어른의 삶은 바깥에 집중된 시선으로 채워집니다. 타인의 평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재단하는 일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작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다릅니다. 그림자는 오롯이 나만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복제할 수 없는 나만의 모양새와 속도, 경계. 그림자 속에는 내가 애써 감추려 했던 것들이 살아 있습니다. 내면에 깃든 불안, 외면받은 감정, 성장 과정에서 억누르고 숨겨둔 상처들. 그림자는 그 모든 것을 품고 묵묵히 나를 따라옵니다.
우리는 종종 빛만을 쫓습니다. 밝은 것, 긍정적인 것, 성공적인 것.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를 외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 말이죠. 오히려 외면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어느 순간 우리를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림자를 만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나를 마주하는 일, 아파했던 순간들을 다시 꺼내보는 일,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는 일. 하지만 그 용기를 낼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빛으로 이루어진 나와 그림자로 이루어진 나, 그 둘 모두가 진짜 나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저물 무렵, 산책길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내 그림자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림자는 말이 없지만,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그림자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세요. 바쁜 걸음 속에서 작아졌다가, 쉬어가는 순간 다시 제 형태를 찾았을 그림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찾아보세요. 그림자를 만나는 시간은 곧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때로는 불편하고 두렵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만드는 하루의 끝. 그 경계에 서서, 오늘도 나를 따라온 그림자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보려 합니다. 고맙다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너도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리고 내일도 함께 걸어가자고.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거부하거나 억압한 자신의 어둡고 부정적인 부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에서는 그림자를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닌, 우리와 함께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책 속의 소녀가 여러 종류의 그림자를 만나고 관찰하는 과정은, 개인이 자신의 억압된 감정이나 숨겨진 잠재력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특히 걱정을 '새의 그림자'에 비유하며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기보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걱정을 자신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둥지를 툰 걱정들이 새처럼 날려 보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자를 만나는 여정은 결국 "자기 자신을 만나는 마법 같은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 인식이 '자기(Self)'라는 전체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부정적인 측면이든 긍정적인 측면이든 그림자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통합할 때, 우리는 더 온전하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림책 은 『그림자를 만나는 시간』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자기 내면의 그림자를 만날 용기를 북돋아주는 심리적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긴 하루의 끝 '나는 내 그림자를 언제 만났을까?' 돌이켜보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를 온전히 수용하고 도닥여줄 마음의 여유도 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