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나요
하얀 바탕에 빨간 실이 그려진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이리저리 엉킨 실의 끝을 붙들고 있는 여자와 반대쪽 끝을 잡고 있는 남자.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둘은 곧 만나게 될 인연이겠죠. 표지를 보고 이 책은 사랑을 기다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특히 사랑에 대한 기다림과 운명적 만남에 대한 믿음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신화와 전설로 전해져 내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전해져 오는 붉은 실 설화를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중국에는 '월하노인'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웨이구라는 젊은이가 송성에서 혼담을 위해 여행하던 중, 달빛 아래에서 한 노인이 자루에서 무언가를 꺼내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호기심에 다가가 물어보니, 그 노인은 자신을 월하노인이라 소개하며 자루 안에 든 것은 '붉은 실'이라고 알려줍니다.
월하노인은 "이 붉은 실로 하늘에서 정해진 남녀의 발목을 묶는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붉은 실로 연결된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나 부부가 된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실은 끊어지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으며, 오직 두 사람이 만나야 할 때가 되어서야 제 역할을 한다고 하지요.
웨이구는 자신의 배우자가 현재 3살짜리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14년 후 정말로 그 아이가 자란 후 아름다운 여성이 되어 자신의 아내가 됩니다. 이는 진정한 인연은 기다림을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본에서는 붉은 실이 발목이 아닌 '새끼손가락'에 묶여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일본인들이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을 걸고 하는 '유비키리(指切り)' 문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아카이 이토데 무스바레테이루(赤い糸で結ばれている,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표현은 운명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가장 로맨틱한 표현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이는 어떤 우연한 만남도 실은 하늘에서 정해진 필연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의 홍연 사상에서는 '기다림' 자체가 수행이자 정화의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급하게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완성해 가면서 기다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한국에서 붉은 실은 주로 '부부인연'을 상징합니다. 전통 혼례에서 신랑신부가 붉은 실이나 붉은 띠로 연결되는 의식은 이러한 믿음에서 유래했습니다.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는 말처럼, 하늘이 정해준 인연은 붉은 실로 이미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습니다. 한국의 독특한 점은 '청색 실' 개념이 더해졌는데요. 청색 실은 부부인연이 아닌 '지인연분(知人緣分)', 즉 친구나 스승, 동반자 등의 인연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여러 색깔의 실로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의 인연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른 인연들이 계속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은탁이가 빨간 목도리를 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반영한 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설화를 소개해드린 까닭은 오늘 이야기를 나눌 다비드칼리 작품에서도 인생의 각 단계마다 다른 형태의 기다림과 만남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붉은 실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인연이 꽃피울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다림 자체가 바로 삶의 본질이며,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며 운명적인 만남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기다립니다'에서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코 밑에 붉은색 실타래가 늘어져 있는 아이에서 시작됩니다. 잠자기 전 나에게 와서 뽀뽀해 주기를, 케이크가 다 구워지기를, 비가 그치기를,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이어 성인이 된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으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주인공의 뒤에는 구불구불한 끈이 뒤따라 옵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사랑을"이라는 글귀를 보아 주인공의 인생이 다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될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화관에서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고, 전쟁으로 인해 헤어지며,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그녀의 편지를 기다리지요. 둘은 결국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어날 아기를 기다립니다. 아내는 자신과 연결된 빨간 끈을 달고 나오는 아기를 출산합니다. 아버지가 된 주인공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봅니다. 부부사이가 그렇듯 서로 싸우고 화해하는 동안 아이도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됩니다. 그 사이 아픈 아내는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실은 끊어져 버렸습니다.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고 혼자가 된 그는 아이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마지막 장면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아버지를 방문한 아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새 식구가 될 손자를 기다리며 이야기는 끝이 나는데요. 빨간 실 아래 "끝"이라는 글자를 "끈"으로 고쳐 쓴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구불구불한 빨간 선을 따라 이어지는 인생 이야기를 보다 보면 우리 인생의 모슨 순간이 '기다림'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항상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걸음을 걷는 순간을, 학교 가는 날을, 사랑을, 태어날 아이를, 마침내 생의 끝을 기다리지요.
하지만 기다림이란 수동적인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삶을 만들어가는 적극적이고 의미 있는 행위로 그려지는데요, 각 페이지마다 반복되는 "나는 기다립니다"라는 문장은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색채가 없는 연필로 그려진 인물들과 붉은 선은 인생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장면마다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독자에게도 전해집니다. 제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상상해보게 합니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 사이 나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요? 더 나은 내일을, 더 성숙한 자신을, 더 진실한 관계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나요? 기다림 자체가 삶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에도 충분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종종 비효율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우리는 기다림의 가치를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과 깊이 있는 경험은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여전히 그것이 올 가능성을 믿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절망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 기다릴 수 있고, 그 기다림이 바로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