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의 아침
어젯밤 늦게 체크인하느라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숙소에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미의 과일은 정말 맛있다.
원하는 토핑을 넣은 오믈렛도 정말 맛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남미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남미 음식이 입에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상파울루에서 또 비행기 추락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비행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온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조식을 먹고 밖으로 나와 가장 먼저 그토록 불안하던 데이터를 해결하기 위해 유심과 데이터를 구매하고
다음 목적지인 쿠스코에 대비하기 위해 고산병 약도 구매했다.
잉카 콜라 (Inka Kola)는 페루 사람들이 코카콜라보다 더 많이 마신다는 국민 음료다. 인위적인 노란색이 다소 식욕을 떨어트리지만, 맛은 풍선껌 맛이 나고 적당히 단 탄산음료여서 기름기 있는 페루 음식에 잘 어울린다.
Miraflores, se vive mejor
살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답게 리마는, 특히 미라플로레스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다른 남미 국가들에 비해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다.
살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 앞에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굳이 명시하지 않은 이유는 이곳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살기 좋은 도시여서일까? 미라플로레스의 케네디 공원에는 고양이 오피스텔이 있다.
고양이들이 사람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길바닥에 드러누워있고, 곳곳에 넘버링이 되어있는 고양이집과 사료가 있다.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 '캣맘'을 비난하는 우리나라 사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팍팍하고 사람 살기조차 버거운 대한민국이지만 길에 떠도는 고양이와 강아지도 모두 함께 사는 나라이길
여행 전부터 가고 싶었던 추로스집이 있어서, 뭘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이기는 했지만 가보기로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대충' 먹을 때도 있지만, '굳이' 뭔가를 찾아먹는 재미도 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엄마와 함께 했다. 혼자서 인천에서 출발해 상파울루까지 날아온 엄마는 나와 함께 상파울루에서부터 여행을 함께 시작했다. 가족여행은 자주 갔지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한 건 처음이라 어색했다. 엄마와 나는 평소에도 대화를 그다지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별로 친하지 않은 편이라
엄마와 3주 내내 함께 하는 여행이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어색하게 운을 떼는 엄마와 기계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불편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이것도 이 여행을 통해 이겨내야 하는 것이겠지
인디언 마켓에서 아주 페루스러운 무늬의 온갖 수공예품을 구경하고 귀여운 알파카 인형도 하나 입양했다.
골목골목 비슷한 듯 다른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모여있는 인디언 마켓은 리마에서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 들러야 하는 마켓 중 하나이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렸을 때 이런 마켓 한편에 내 공간을 두고 수공예품을 파는 거였는데.
알이 엄청나게 큰 페루의 옥수수.
페루에서 꼭 먹어야 하는 세비체도 먹어봤다. 한국에서 먹는 세비체는 우리 입맛에 맞게 많이 변형돼서 그런 건지, 페루에서 먹는 세비체는 훨씬 신맛이 많이 나서 자꾸 입맛이 돈다.
우버를 타고 구시가지로 갔다. 대통령궁이 있는 구시가지는 미라플로레스보다는 치안이 좋지 않고 거리도 덜 정비된 느낌이지만, 옛날의 모습을 조금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리마를 만나고 싶다면 추천한다.
페루 곳곳에서는 건물에 목재 발코니가 어색하게 붙어있는 형태를 많이 볼 수 있다. 스페인 식민지배를 받던 시기에 영향을 받은 건축 양식인데, 비가 많이 오지 않던 페루는 목재가 귀해서 아마존 지역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든 테라스로 부를 과시하면서 생겨난 건축 양식이라고들 한다. 특이한 건축 양식이어서인지 수공예품 마켓에서도 이 목재 테라스의 미니어처를 팔기도 한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세워진 도시인 리마는 아주 조금만 나가면 바닷가가 보인다.
스페인의 가우디가 생각나는 모자이크 타일과 남산 공원처럼 철조망을 빼곡하게 메운 자물쇠들. 그리고 키스하는 두 남녀의 동상이 있는 이곳은 사랑공원 (Parque del Amor)이다. 이름답게 이곳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명소이기도 하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에는 돗자리도 깔지 않고 앉거나 누워서 쉬는 페루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자유롭게 사랑하는 이들.
이곳은 절벽에 세워진 라르코마르 쇼핑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는데, 온갖 브랜드가 입점된 이곳은 마치 우리나라의 스타필드 같다.
한국에서 안면을 튼 친구가 페루 리마에서 인턴을 마치고 마침 시간도 맞는다길래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이다. 한국에서는 사적으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과, 여행을 하며 같은 나라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용기 내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사람과의 만남으로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는 것.
해지는 리마를 보며 여행의 시작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가장 특색이 없어서 기대가 되지 않았던 리마, 그리고 페루였는데 점점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함께 사는 법을 아는 리마에서 시작한 남미여행,
내일은 해발 3,400m의 도시 쿠스코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