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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리아 - 리마

by 레띠쌰




2025.02.06 Thu.


전날 잠을 설쳤다.

설렘 반 걱정 반.


촘촘하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구글 로드뷰까지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이번 여행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이니까.


짐을 챙겨서 브라질리아 국제공항으로 떠났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지만 정신만은 또렷하다. 목요일 오전인데도 공항에 사람이 많았다. 다들 어딜 가는 거야?


브라질리아에서 상파울루는 비행기로 한 시간 반도 걸리지 않는다. 남미생활에 그새 익숙해진 나에게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면 옆동네 같은 느낌.




상파울루 과룰류스 (Guarulhos) 공항은 브라질을 통틀어서 가장 큰 허브 공항이다. 공항이 워낙 크다보니 경유하는 것도 일이다.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가려면 15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가는 길에 온갖 목적지로 떠나는 온갖 사람들을 만났다. 그 와중에 동양인은 몇 없다. 보딩 시간이 임박했는지 어떤 사람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전력질주하는 걸 보았다. 남 일이 아닐 것 같아 괜히 착잡한 마음으로 '제발 비행기 놓치지 마세요' 속으로 빌어주었다.




상파울루에서 리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브라질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컵에 이름과 메세지를 적어주기 때문이다.


"Tenha um ótimo dia" 좋은 하루 되시라는 이 짧은 글은 쓰는데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겠지만 여행을 시작하는 나에게는 정말 큰 설렘이었다.


스타벅스에 짐을 두고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옆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짐을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반갑게 웃으면서 혹시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물었고 한국인이라는 대답에 본인이 수원에 가본 적이 있다면서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너스레. 나는 태생이 예민한 사람이라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피하기에 바빴는데, 여기서는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싱긋 웃으면서 눈인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낯선 사람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상파울루에서 리마까지는 다섯시간.

밖을 내다보니 붉은 빛으로 물든 페루가 보인다.


호르헤 차베스 공항에 도착하니 온통 스페인어다. 포르투갈어에만 익숙해져있다보니 스페인어가 입에 붙지를 않는다. 페루에서 가장 큰 공항이라던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고, 다소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게이트 앞에서 딱시- 딱시- 하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하다. 무조건 우버를 탈 생각이라 택시 호갱을 뚫고 밖으로 나와 미리 불러놓은 우버를 찾아 헤맸다. 데이터가 잘 되지 않아 한참만에 우버를 찾아서 짐을 싣고 출발하는 순간 몸에 긴장이 확 풀렸다.


도착해서 유심을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미리 에어알로 E-sim을 구매했는데, 도통 되질 않았다.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우버기사와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마음이 불안했는데 우버 기사가 본인의 핫스팟을 연결해서 인터넷을 쓰라고 했다. 여행하면서 예민해지고 불편한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인터넷이 잘 되지 않을 때였는데,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세계를 누비던 사람들을 더 존경하게 됐다.


잔잔하게 들리는 스페인어 라디오를 들으면서 숙소가 있는 미라플로레스 (Miraflores)로 가는 길. 미라플로레스는 리마에서도 부촌이고 치안이 괜찮은 동네여서 이곳에 첫 숙소를 잡았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에 바깥 풍경을 보면서 여행의 시작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안개도 짙게 껴있고,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에 잠시 숨돌리느라 바깥 구경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40분 정도 달려서 숙소에 도착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호텔 바로 앞에 있는 펍에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시끄러우면 어쩌나 했는데 방에 들어가니까 쥐죽은 듯 조용하다. 여행의 시작점인만큼 숙소를 찾을 때 공을 많이 들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조용하고 아늑했다.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페루에서 여행을 시작해서인지 기대되는 마음보다는 긴장되고 벌써 조금 지친 것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때는 몰랐지 내가 페루와 사랑에 빠질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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